"'거시기'로 불리다 이름 찾았을 때 나도 모르게 울컥…책임감 강해져"

SBS 드라마 '녹두꽃'서 동학군 '백이강' 열연
전투장면 촬영하다 포탄에 얼굴 맞을 뻔
'엑시트' '슬기로운 의사생활' 기대하세요
잼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조정석의 연기를 보면 그의 진짜 얼굴은 뭘까 싶다. 저토록 진지하고, 익살스럽고, 재치 넘치는 연기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최근 종영한 SBS 대작 드라마 ‘녹두꽃’에서 조정석은 동학농민군 별동대장 백이강을 연기했다. 부패한 관리, 기우는 국운, 외세의 간섭에 피폐해진 민초들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죽창을 들고 일어났다. 얼자(孼子)로 태어나 차별받다가 ‘나’만의 세상이 아니라 ‘우리’의 세상에 눈을 뜨고 동학군이 된 백이강의 캐릭터를 실감나게 살려낸 조정석을 만났다.

“활자로만 접했던 일을 드라마를 통해 직접 겪으면서 흥미롭고 재밌었고 의미 있었습니다. 저로 인해 역사가 왜곡되면 안 되니까 공부도 했죠. 의미 있는 작품의 일원으로 참가해 책임감도 남달랐어요.”‘녹두꽃’은 동학농민운동을 소재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던 민중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주인공은 녹두장군 전봉준이 아니라 허구의 인물들이다. 백이강은 이방 아버지와 노비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얼자다. 이름 대신 ‘거시기’로 불리며 차별대우를 당해야 했다. 백성들의 재산을 수탈하는 데 앞장선 것도 ‘어르신’(아버지)에게 순종하기 위해서였다. 각성한 백이강은 자신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동학군이 되기로 결심한다. 조정석은 이런 백이강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역할에 몰입해서인지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백이강의 변화가 그대로 와 닿았죠. ‘거시기’에서 ‘백이강’으로 거듭나면서 책임감이 강해지는데, 저에게도 자연스럽게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함께 고생했던 동료의 죽음을 볼 때, 어머니에게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며 울 때, 전투에서 몇 차례 패배한 뒤 민중의 의견을 듣기 위해 연설하러 나설 때 백이강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왔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울컥울컥하네요.”

SBS 제공
백이강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즉천(人卽天)의 본보기였다. 그랬기에 들불처럼 일어난 민중 속에서도 더 뜨겁고 애끓는 심장을 갖고 있었다. 조정석은 “그의 울컥하는 마음이 내 입과 내 몸을 통해 구현됐을 때 시청자들이 공감해주길 바랐다”며 기억에 남는 대사를 읊조렸다. “겨우 몇 달이었지만, 사람이 동등허니 대접허는 세상 속에서 살다본께 아따, 기깔나갖고 다른 세상서 못 살겄드랑게. 그래서 난 싸운다고! 찰나를 살아도 사람처럼 살다가 사람처럼 죽는다, 이 말이여.”

‘녹두꽃’은 고부 봉기, 황토현 전투, 황룡강 전투, 갑오개혁, 우금치 전투, 청일전쟁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민중의 시각에서 보여줬다. 이를 생생하게 재현해내기 위해 촬영 현장에선 그야말로 피가 터졌다.

“황룡강 전투 촬영 때 제 오른쪽에 심어놓은 포탄이 있었는데 그게 터지면서 파편이 날아와 크게 다칠 뻔했어요. 오른쪽 귀와 얼굴을 강하게 때렸죠. 보통 연기에 집중하면 다쳐도 아픈 줄 모를 때가 많은데 그땐 정말 아팠어요. 하하하.”격동의 시대 속에서 백이강과 이복동생 백이현(윤시윤 분)은 자꾸만 엇갈렸다. 개화를 통해 찬란한 발전을 꿈꿨던 엘리트 백이현은 현실의 벽에 좌절했고, 스스로 ‘오니’(일본어로 도깨비)의 삶을 택해 일본의 앞잡이가 됐다. 마지막엔 극단적 선택으로 죽음을 맞는다. 조정석은 “시윤의 대본을 보면 빼곡하다”며 그의 준비성과 열정을 치켜세웠다. 그는 “이현이 죽는 건 처음부터 정해진 결말이었던 터라 그 사실을 알고도 백이현을 연기하는 시윤은 더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겪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정석의 얼굴은 오는 31일부터 극장가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그가 주연한 영화 ‘엑시트’가 이날 개봉한다. 그는 또 ‘응답하라’ 시리즈의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의 신작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가제)로도 시청자를 찾아갈 계획이다.

김지원 한경텐아시아 기자 bell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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