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英 유조선 기습 나포…英, 즉각 '경제·외교 보복戰' 선언

美의 무인기 격추 하루 만에
이란, 추격전·헬기 강하 끝 억류

지난달 지브롤터 해협서
유조선 나포한 英에 앙갚음
세계 원유시장 주요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서 주요국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지난 19일(현지시간) 영국 유조선을 나포하자 영국은 경제·외교 제재로 맞설 태세다. 이번 나포 사건은 이란 핵협정을 놓고 이란과 대립 중인 미국이 이란 드론(무인기)을 격추한 지 하루 만에 일어났다.


20일 이란 국영 IRNA통신은 IRGC가 전날 영국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호를 나포해 수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IRGC에 따르면 스테나 임페로호는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신호를 끄고 정해진 항로를 벗어나 호르무즈 해협에 진입하던 중 IRGC 주요 근거지인 케슘섬 인근에서 나포됐다. 당시 영국 군함 한 척이 스테나 임페로호 등을 호위하고 있었지만 IRGC가 쾌속정과 헬리콥터 등을 이용해 나포를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란 고위 인사들은 이번 나포가 지난 4일 영국 해군과 영국령 지브롤터 당국이 이란 유조선을 나포한 데 대한 보복성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 해군은 유럽연합(EU)의 대(對)시리아 제재를 어기고 원유를 시리아로 밀반입하려 한다는 이유로 이란 유조선을 억류하고 있다. 이란은 영국 유조선을 억류해 앙갚음하겠다고 맞섰다. 지난 10일엔 IRGC 무장 선박 세 척이 영국 유조선을 나포하려다 영국 해군 군함과 대치 끝에 퇴각했다.

아바스 알리 카드호다이 이란헌법수호위원회 대변인은 20일 이란 반관영 파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는 국제법에 따라 적법한 대응 행위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헌법수호위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고위 자문단이다. 역내 분쟁 사건에 대해 논평을 내놓는 것은 이례적이다. 같은 날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도 트위터에 “지브롤터에서 이란 유조선을 나포한 ‘해적 행위’와는 달리 이란이 영국 유조선을 나포한 것은 합법적”이라며 “영국은 미국의 경제테러 공범 일을 멈춰야 한다”고 경고했다.영국은 강경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영국 국방부는 스테나 임페로호가 나포 당시 오만해역에서 국제법을 준수하고 있었으므로 IRGC가 나포한 것은 불법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영국 외무부는 이날 주영 이란 대리대사를 초치하고 영국 유조선을 즉각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같은 날 제러미 헌트 영국 외교장관은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과 통화했다”며 “이란이 1주일 전엔 긴장 완화를 원한다고 해놓고는 정반대로 행동한 것에 극히 실망했다고 전했다”고 밝혔다.

영국 당국은 19~20일 이틀간 긴급 안보 장관급 회의인 ‘코브라’를 소집했다. 영국 국적 선박은 당분간 호르무즈 해협을 항해하지 말라는 권고도 발표했다.

영국은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 카드도 내놓을 예정이다. 영국 매체 텔레그래프는 “영국 정부가 이란에 대한 외교적·경제적 제재 방안을 21일 발표할 계획”이라며 “이란 핵협정에 따라 해제됐던 이란 자산 동결 조치 등을 재개하는 안을 EU 등에 요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전문가들은 이란 핵협정 당사국인 영국이 대이란 경제 제재를 공식 요구하면 중동지역 내 불안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이 핵협정 준수 전제 조건으로 영국 등 유럽의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IHS마킷의 대니얼 예긴 부회장은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영국 유조선 나포는 명백히 이란의 보복 조치”라며 “이란 핵협정 논의와 원유시장엔 불안 요소”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