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일 갈등에 애꿎은 기업을 희생제물 삼아선 안 된다

‘징용 배상’ 판결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악화일로로 치닫는 가운데 ‘일본 제품 불매운동’도 확산되는 모습이다. 성인 54.6%가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한 주 만에 참여율이 6.6%포인트 높아졌다.

치졸한 경제 보복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불매운동은 자연스러운 대응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 정부의 협상력을 강화하고, 일본 정부의 자제를 압박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문제는 감정적으로 치달으면서 애먼 기업들이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롯데그룹이 단적인 사례다. 롯데가 일본 기업과 합작한 유니클로 아사히맥주 등은 최근 매출이 30%가량 줄었다. 중국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의 표적이 돼 큰 타격을 입은 데 이어, 이번에는 한·일 갈등의 불똥이 덮친 것이다. “롯데마트가 사드 보복으로 중국에서 철수한 것처럼 유니클로를 철수시켜 보자”는 식의 반응도 나온다. 우리가 그토록 비판하는 중국의 만행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빗나간 애국주의일 뿐이다.

다이소 LG유니참 CU 세븐일레븐 등도 ‘불매 대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다이소 대주주가 한국 기업인 데서 보듯 사실을 오인한 경우가 태반이다. 불매운동이 일본보다 국내 경기와 고용에 더 타격을 준다는 냉정한 계산도 필요하다. 유니클로만 해도 국내 200개 매장에서 5300여 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친일파’ ‘이적 행위’ 등 이분법적 언사를 쏟아내는 정부·정치권 행태가 가장 걱정스럽다. 무책임한 이들 선동에 휩쓸리는 것은 공멸의 길이다. 포스코를 비롯해 일본 자금이 투입된 기업을 무작정 친일로 몰 수 없는 것처럼, 고도의 경영 판단을 애국과 매국의 잣대로 재단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일본 주장에도 귀 기울일 대목이 있는 만큼 불매운동도 좀 더 성숙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