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청운동 주택'과 승지원

록펠러센터 카네기홀 포드박물관 밴더빌트대…. 미국에는 저명한 기업인 이름을 이어가는 이런 명소가 많다. 세계인을 불러들이는 미국의 풍성한 문화유산이다. 최강국 미국의 저력이 나오는 곳일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하는 ‘슈퍼파워 미국’의 힘의 근원도 기업과 기업가정신을 빼놓고 말하기는 어렵다.

기업가정신은 한때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한강의 기적’에서도 핵심적 성공 요인이었다. 아산(峨山) 정주영, 호암(湖巖) 이병철 같은 선구적 기업인의 도전정신과 노력은 세계일등 국가를 만든 미국 기업가들과 비교해도 조금도 뒤질 바 없을 것이다.“해봤어?”의 개척정신으로 한국 산업의 현대화를 이끈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서울 청운동 주택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물려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아산이 1962년부터 2000년까지 38년간 살았던 집이다. 올해 공시지가는 33억원으로, 그간 정몽구 회장 소유였다. 《이 땅에 태어나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등의 자서전으로 아산이 치열했던 기업가의 삶을 기록으로 남긴 곳이기도 하다. 현대가(家)의 상징 같은 집이다. 한국 산업사에 남을 비사(祕史)가 깃든 이 주택이 어떻게 활용될지 주목된다.

현대가에 ‘청운동 주택’이 있다면 삼성에는 ‘승지원(承志園)’이 있다. 삼성은 호암의 주거지였던 서울 한남동 주택에 ‘창업자의 뜻을 이어받는 집’이라는 의미로 이 이름을 붙이고 회사의 중요한 손님을 맞는 영빈관으로 쓰고 있다.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방한했을 때도 이곳을 찾았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주선으로 이곳에서 정 수석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도 함께 간담회를 해 관심을 끌었다.

승지원과 청운동 주택은 1960년대 한국이 고도성장의 기반을 다질 무렵부터 쌍두마차로 산업계를 이끈 두 거목의 기업가적 집념이 서린 곳이다. 이런 곳을 물려받은 3세 경영인들이 조부의 기업가정신과 기(氣)까지 잘 이어받아 우리 경제가 다시 도약하는 데 앞장서길 바란다. 이래저래 기업가정신은 가라앉았고, 케인스가 역설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도 위축되고 있다는 걱정이 커지는 상황이다. 정치도, 행정도 기댈 바가 줄어드니 기업 쪽을 더 바라보게 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