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일본의 對韓 수출규제를 타개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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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공간에서 토론을 꺼리는 일본 문화지난 19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를 불렀다. 한일청구권 협정에 근거해 일본이 제기한 중재위원회 설치 요구에 한국 정부가 응하지 않자 이를 다그치기 위해서였다. 그 자리에서 남 대사가 징용공 배상을 한국과 일본 기업이 함께 부담하는 방안을 언급하려 하자 고노 외무상이 말을 막았다. “한국 측 제안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전달한 바다. 그것을 모르는 체하며 새삼스레 다시 제안하는 것은 극히 ‘무례’하다”며 언성을 높였다.
'물밑 작업팀' 가동, 사전조율 우선해야
국중호 < 日 요코하마시립대 교수·경제학 >
TV 등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한국인들은 ‘일본 외무상이 왜 그렇게 나왔을까’ 원인을 찾기보다 ‘무례’라고 한 표현에 감정이 격해졌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나갈수록 사태는 점점 더 꼬이게 된다. 일본의 속내와 일처리 방식을 헤아리며 수출규제를 풀게 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일본은 한국을 대할 때 ‘지속적 신뢰성’이 확보되지 않았다고 거북해한다. 작년 10월 말 대법원의 징용공 배상 판결이 나온 후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에 피해가 없도록 하는 대응책, 양국 간 협의(올해 1월) 및 중재위원회 설치(5월과 6월)를 요청했는데 한국 정부는 이를 모두 거부했다. 일본은 한국을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낙인 찍었고,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규제 조치를 취했다.
정치·외교전에서 비롯된 것을 ‘신뢰성’ 문제를 들어 수출규제라는 경제적 제재로 비화한 일본의 결정은 성숙한 자세가 아니다. 원인이 어떻든 일본에서 수입하는 소재·부품을 국산화하는 것도 당장은 어렵다. 한국은 ‘흐름(flow)’에 강한 민족성을 갖고 있고 일본은 ‘축적(stock)’의 속성이 강한지라 산업에서도 강점을 갖는 분야가 서로 크게 다르다.
한국이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일본은 많은 기술과 자본, 지식을 축적하고 있다. 일본의 고급 소재·부품은 지속성을 중시하는 국민성이 투영된 결과다. 그래서 한국이 금방 따라잡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국으로서는 일본의 ‘축적’을 활용하는 전략이 제품의 성능을 좋게 하고 경제 활성화로 이어지게 할 수 있다. 바꿔 말해 한·일관계 악화가 초래하는 일본의 스톡 활용 단절은 한국의 경제 위상을 떨어뜨릴 위험성이 크다는 얘기다.김현종 국가안보실 제2차장은 19일 기자회견에서 “민주국가로서 한국은 대법원의 징용공 배상판결을 무시도, 폐기도 할 수 없다”며 일본에 대립각을 세웠다. 일본(인)은 열린 공간에서 토론하는 것을 꺼린다. 이런 일본을 향해 ‘공개적으로’ 어떤 입장을 개진한다면 그들은 호응하지 않을 것이다. 현안 문제를 해결할 의향이 없는 것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그들의 일처리는 ‘구성원 간 해당 안건 정보 공유→실무담당자 간 사전조율(물밑 작업)→전체회의 의결’의 과정을 거친다. 사전조율이라는 물밑 작업 없이는 이번 사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고노 외무상이 초치한 자리에서 한국 대사가 타진하려 한 방안은 사전 조율이 안 된 논제로 비쳤을 것이다. 고노 외무상은 아주 껄끄러웠을 것이다. 현 정부가 이전의 정부와는 다른 태도를 취하면서도 한·일관계 악화로 인한 손실을 줄이고자 한다면 ‘물밑 작업팀’을 가동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꼬일 대로 꼬인 한·일관계는 회복되기 힘들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