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421명 사망…'죽음의 분무'는 어떻게 시작됐나(종합)

1994년 유공, 최초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 메이트' 출시
정부 등록 피해자 6천476명 중 1천421명 숨져…SK·애경도 결국 재판에
가족의 건강을 위해 구매한 가습기 살균제가 '죽음의 습기'를 뿜어낼 줄은 몰랐다. 가습기 안에 넣는 물에 약품을 타는 방식의 살균제는 1994년 11월 세계 최초로, 그리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출시됐다.

판매가 금지된 2011년까지 17년간 980만통이 팔려나갔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터졌으나 그 이후에도 사망까지 이를 정도로 유해한 제품이 당초 어떻게 시중에 나올 수 있었으며, 이를 모방한 제품이 뒤따라 출시돼 날개 돋친 듯 팔렸는지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2016년 옥시·롯데마트·홈플러스를 재판에 넘기고서 3년 만에 재개된 검찰의 가습기 살균제 수사에선 가습기 살균제 최초 개발 단계부터 안전성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제품 부실개발'
이번 검찰 수사의 타깃은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원료를 이용해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 등이었다.

CMIT·MIT는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인 '유공 가습기 메이트'에 포함된 물질이다. SK케미칼이 2000년 유공(SK이노베이션의 전신)의 가습기 살균제 사업 부문을 인수해 같은 제품이 계속 판매됐다.

'가습기 메이트'는 옥시의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 다음으로 많은 피해자를 냈으나 원료물질의 유해성이 인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련 기업들이 작년 말까지 수사와 이에 따른 법적 처분을 피해왔다.

옥시싹싹은 비교적 일찍 유해성이 인정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원료로 썼다. 검찰 수사는 CMIT·MIT 원료의 유해성에 대한 학계의 역학조사 자료가 쌓이고, 환경부가 뒤늦게 관련 연구자료를 제출하면서 지난해 11월 재개됐다.

검찰 수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최초 출시 당시부터 '부실 개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셈이다.

검찰이 확보한 1994년 9월 유공 가습기 메이트 개발 담당 연구원의 연구 노트를 보면, 연구원은 CMIT·MIT 농도를 설정할 때 인체에 안전한 정도를 정한 기준(안전계수)을 고려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해당 물질은 매우 위험해 제조상 애로가 있다"고 진단한다.

이어 "향후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되면 각종 단체 및 매스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당사에서 위험부담을 안고 반드시 상품화해야 할 정도로 시장성이 큰지 다시 한 번 재고해야 한다"고 밝힌다.

이 연구 결과를 받아든 유공은 서울대 수의대 이영순 교수팀에 의뢰해 1994년 10∼12월 다시 한번 유해성 실험을 진행하고, 안전성을 검증받으려 한다.

당시 연구팀은 '가습기 살균제 성분으로 인해 (실험용 쥐의) 백혈구 수가 변화하는 것을 확인했다'며 '유해성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추가 흡입독성 시험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유공은 추가 연구를 통해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최종 보고서(1995년 7월 발간)가 나오기도 전인 1994년 11월 가습기 메이트를 시장에 내놓았다.

회사는 '물에 첨가하면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완전히 살균해주는' 제품을 개발했다는 신문 광고도 시작한다.
◇ '추가 실험 필요' 보고서 받고도 그대로 제품 판매한 SK
안전성 검증 부실은 2000년 SK케미칼이 유공으로부터 가습기 살균제 사업 부문을 인수했을 때도 이어진다.

SK케미칼은 추가 흡입독성 실험이 필요하다는 서울대 연구 보고서 등을 건네받았으나 추가 검증 없이 그대로 제품을 만들었다.

2002년부터는 생활용품 제조·판매 노하우가 있는 애경산업이 가세해 SK와 손잡고 '가습기 메이트' 판매를 시작한다.

애경 역시 제품 출시 전에 SK케미칼로부터 서울대 연구 보고서를 받고서도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제품을 출시한다.

영국의 다국적기업 레킷벤키저가 2001년 옥시를 인수한 뒤 2000년 출시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에 대한 안전성 점검을 하지 않다가 피해를 키운 것과 비슷한 구조다.

안전성에 대한 기업의 근본적인 인식 부족이 피해자를 키운 원인으로 지적된다.

게다가 SK·애경은 '가습기 메이트'가 인체에 유해하지는 않은지 문의하는 고객 불만 사항을 다수 접수하고도 아무 조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제품 부실개발'로 인한 대량 피해가 감지된 것은 첫 제품 출시 후 17년이 지나서였다.

2011년 4월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이 임산부 등 원인 미상의 폐 질환 환자 7명을 발견해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하면서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시작된다.

그해 11월 보건복지부가 추가 피해 발생을 막기 위해 가습기 살균제를 시중에서 회수해 유통을 막았고, 그제야 인체에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 판매가 중단됐다.

가습기 살균제를 최초로 개발한 유공의 노승권 당시 팀장은 2016년 열린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최초 개발 당시 흡입독성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예, 했습니다", 이상이 없었느냐는 질문엔 "이상이 없었습니다"라고 답했다.

시간이 오래 지난 터라 유공 제품의 피해자는 찾을 수 없기에 '가습기 메이트' 최초 개발자는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특별위원회에서 위증한 경우 특위 활동 기간 내에 고발했을 때만 기소할 수 있기 때문에 위증죄를 묻기도 어렵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이달 19일 기준으로 6천476명이며, 이 중 1천421명이 사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