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사건' 8년 만에 수사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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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기업체 前 대표 등 34명 재판에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인명피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지 8년 만에 검찰이 관련 수사를 마무리했다.
"안전성 검증 없이 판매"
2011년 사건 재조사결과 발표
정부 주무부처와 기업 유착도
1차 수사 때는 21명이 기소됐고, 이번 2차 수사에는 34명이 기소돼 총 55명이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재판에 넘겨졌다.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의 유해성이 추가로 밝혀져 책임자들의 처벌 범위가 커진 것이 2차 수사의 성과로 꼽힌다. 현재 100억원대인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 규모도 훨씬 커질 전망이다. 지난 19일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정부에 공식 등록한 피해자는 6476명이며, 이 중 사망자만 1421명에 달한다.檢, 홍지호 전 대표 등 34명 무더기 기소
23일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권순정)는 약 8개월간의 재수사 결과 유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 및 판매한 SK케미칼의 홍지호 전 대표 등 8명을 구속 기소하고,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2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 등 16명은 유해물질인 CMIT와 MIT를 원료로 ‘가습기 메이트’ 등을 제조 판매하면서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아 소비자들을 사망 또는 상해에 이르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상)를 받는다.
이번 수사의 핵심은 CMIT와 MIT의 유해성 입증 여부였다. 2016년 1차 수사 때는 CMIT·MIT와 피해의 인과관계가 확정되지 않아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원료로 사용한 옥시, 롯데마트 임직원 등 21명만 기소됐다. 하지만 환경부가 지난해 CMIT·MIT의 유해성 연구자료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재수사가 이뤄졌다.검찰은 이들 업체 측이 CMIT·MIT의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고 봤다. 1994년 서울대에 ‘가습기 메이트’ 독성에 대한 시험을 의뢰했고, 서울대는 이듬해 “안전성 검증을 위해 추가 시험이 필요하다”고 결론 냈으나, 이 같은 보고서가 나오기도 전부터 판매를 개시했다는 것이다.
환경부 공무원이 뇌물을 받고 기업과 유착해 내부 정보를 건네준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환경부 서기관 최모씨는 2017년부터 올해까지 애경산업으로부터 수백만원 상당의 금품 등을 받고 환경부 국정감사 자료, 가습기살균제 건강영향 평가 결과보고서 등을 제공했다. 최씨는 수뢰 후 부정처사,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로 22일 불구속 기소됐다.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유리해질 것”가습기살균제 사건은 2011년 서울 시내 한 병원에서 산모 7명이 원인 불명의 폐질환에 걸려 4명이 사망하면서 시작됐다.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이후에도 피해자가 속출하며 논란이 커졌다. 그럼에도 검찰 수사는 더뎠다. 2012년 수사의 첫발을 뗐으나 “역학조사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이유로 2016년에서야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수사 착수가 늦어 피해자 구제도 지연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피해자 측은 안도감과 아쉬움을 동시에 보였다. 환경보건시민센터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황정화 변호사는 “PHMG뿐 아니라 CMIT와 MIT의 유해성이 규명되고, 그동안 혐의를 부인하던 SK케미칼 관계자들도 기소되면서 향후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과정에서 유리한 면이 생겼다”고 밝혔다. 황 변호사는 현재 피해자와 유족 약 300여 명의 민사 소송을 대리하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8년 동안 수백만 명의 국민이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점을 감안하면 피해자 규모는 최소 30여만 명으로 추산한다”며 “정부가 집계한 피해자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주장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