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일은 왜 하는가…일이 인생을 단련한다

일이 인생을 단련한다

니와 우이치로 지음 / 김윤경 옮김
한국경제신문 한경BP / 292쪽 / 1만6000원
GettyImagesBank
1970년대 초 미국에 심각한 가뭄이 이어졌다. 뉴욕타임스 1면에 물이 없어 곡물이 시들고 땅이 갈라진 사진이 실렸다. 일본 이토추상사 유지부(油脂部) 직원으로 뉴욕지사에서 일하던 니와 우이치로는 선물거래로 콩을 대거 사들였다. 콩 수확량이 줄어 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매입 규모를 한창 늘려가던 시점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설마’ 하는 그의 생각과 달리 죽어가던 콩이 살아났다. 분위기는 반전됐다. ‘대풍작’ 예측에 힘이 실리면서 콩 시세가 폭락했다. 장부상 손실이 500만달러가 넘었다. 천재일우라고 여겼던 기회가 회사를 뒤흔드는 위기가 됐다.

감당할 수 없는 숫자에 짓눌렸지만 ‘일을 저지른’ 직원은 사표를 내지 않았다. ‘난 이제 끝났어’라며 술을 마시는 대신 ‘이까짓 일에 무너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직접 차를 몰고 콩 산지를 오가며 현황을 파악했다. 민간 일기예보 회사를 통해 정보를 수집했고 기상청 자료를 분석했다. 반 년 만에 서류상의 손실을 만회했다. 59세에 이토추상사 사장이 된 그는 6년 후 회장으로 추대됐다.

니와 우이치로 전 이토추상사 회장은 《일이 인생을 단련한다》에서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스스로를 성장시키며 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서문에서 그는 “앞으로 세상의 중심이 될 젊은이들이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인생의 희로애락, 그중에서도 다양한 기쁨을 알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밝혔다.

그가 말하는 일의 기쁨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에서부터 나온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출세하고 권력을 갖고 싶은 게 일의 목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이 목적이 된다면 일에서 느끼는 행복과 만족도에 한계가 분명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에게 일은 ‘인간으로서 성장해가는 과정’이었다. 그는 “일하면서 다양한 감정을 경험했고 인간을 이해하게 됐다”며 “일을 통해 인간으로서 얼마나 성숙하고 완성돼 가느냐에 그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 덕분에 한결같이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었고 설렘을 추구하며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책은 일을 하면서 성장하는 방법과 상사와 부하 직원 간의 관계, 조직과 개인의 의미, 노력으로 자신을 다듬어가는 과정을 찬찬히 풀어간다. ‘금수저’가 아니라 평범한 사원으로 입사해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그이기에 식상할 만한 충고도 진심 어린 조언으로 다가온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힘든 부서로 발령받았다면 ‘돈을 받으면서 성장할 기회’로 여겨라”는 것도 그렇다. 저자는 “사람은 일을 통해 단련되고 힘든 일일수록 성장할 수 있다”며 “경험을 쌓을수록 할 수 있는 업무의 폭이 넓어지고 능력은 향상된다”고 서술한다. 그도 처음 입사했을 땐 모두가 선망하는 철강부에 지원했지만 정작 배치받은 곳은 식료 부서였다. 결과적으로 농작물 매입부터 가공, 판매까지 담당하면서 가장 상사다운 일을 할 수 있었다.

웹툰 '미생'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저자의 경력은 이토추상사에서 멈추지 않았다. 일본 유엔세계식량계획협회 회장을 지냈고 2010년엔 민간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주중 일본대사에 발탁됐다. 저자는 그 확장의 기반을 ‘독서의 힘’으로 꼽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타인에 대한 상상력과 공감이고 그 원천은 독서와 경험이라는 것이다.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낙관적으로 행동하라’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돼라’ ‘노력 없는 자부심은 오만일 뿐이다’ 등 책에 담긴 ‘격언’들의 원천이기도 하다.종합상사를 배경으로 한 저자의 생생한 이야기는 종합상사에 입사한 주인공의 분투를 한 판의 바둑에 빗댄 윤태호 작가의 만화 ‘미생’을 떠올리게 한다. ‘미생’에는 “인생은 끊임없는 반복,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성취한다”는 명대사가 나온다. 저자도 비슷한 문장을 책에 담았다. “인간은 일단 반복하고 또 반복해 같은 일을 해나감으로써 성장한다.” 반복을 그저 지루한 것으로만 치부해버릴지 모를 젊은이들에게 저자는 묻는다. “일의 진정한 즐거움과 기쁨을 알지 못한 채 인생을 그렇게 끝낼 것인가.”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