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꽁꽁 묶은 '블록체인특구'…"일본 간 카카오·네이버 돌아올 이유 없어"
입력
수정
부산 블록체인특구 지정에도 업계 반응 시큰둥정부가 부산광역시를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선정했지만 업계 반응은 시큰둥하다. 블록체인 규제를 풀어 혁신 서비스를 선보이라는 취지에도 정작 가상화폐(암호화폐) 활용 서비스는 일체 허용하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암호화폐 여전히 규제덩어리인 '규제자유특구'블록체인 기업들의 규제 고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처사다. 국내 블록체인 기업들은 규제 이슈 때문에 일본·싱가포르·스위스 등 해외에 법인을 설립해 블록체인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이 많다. 카카오의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가 일본 법인이며 네이버도 일본 법인 라인을 통해 블록체인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다.
국내로 들어와야 할 세수와 고용이 타국으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블록체인 규제로 인한 '국부 유출' 지적까지 나오자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규제 특례가 적용되는 블록체인 특구 지정에 박차를 가했다. 막상 블록체인 특구의 뚜껑이 열리자 업계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특구 내에서도 암호화폐 발행(ICO)과 유통이 금지됐기 때문. 대다수 블록체인 업체들이 암호화폐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진행하고 있어 사실상 특구를 지정한 의미가 없다는 비판이 일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암호화폐 유통을 막으면서 블록체인 사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은 주식 거래를 막으면서 주식회사를 키우겠다는 격"이라며 "특구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를 지경이다. 해외는커녕 국내 기업 유치나 가능하겠느냐"고 꼬집었다.
◆ 일본은 대기업의 암호화폐 산업 진출까지 허용해외는 다르다. 일본은 규제자유특구 부산에서 불가능한 대부분의 사업이 허용된다. 일본 정부는 이미 2016년부터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암호화폐를 합법화했다.
특히 올 초 아베 신조 내각은 금융상품거래법·결제서비스법 개정안을 승인했고 지난 5월 중의원·상의원도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암호화폐는 법률상 '암호자산'이란 단어로 통합되며 암호화폐를 이용한 마진거래도 초기 예치금의 4배까지 허용한다.
정부가 경계를 긋고 법제화를 마치자 대기업들의 암호화폐 사업 진출도 활발해졌다. 일본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라쿠텐을 비롯해 노무라 홀딩스·다이와증권·MUFG은행·다이이치생명 등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핀테크(금융기술) 기업 '디커렛'이 설립한 암호화폐 거래소가 대표적이다. 일본 금융청 인가를 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미국도 뉴욕주의 경우 2015년부터 암호화폐 거래소들에 '비트라이선스' 자격을 발급해왔다. 이 자격을 취득한 기업에만 암호화폐 취급을 허용한다. 현재 20여개 암호화폐 기업이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모회사 인터컨티넨탈익스체인지(ICE)가 만든 비트코인 선물거래소 '백트(Bakkt)', 피델리티 자회사 '피델리티 디지털 에셋 서비스'는 비트라이선스보다 사업 범위가 넓은 '신탁 라이선스'를 신청해 뉴욕 금융 당국 인가 절차를 밟고 있다. ◆ 블록체인만 규제자유특구, 과연 실효성 있을까
전문가들은 이번 블록체인 규제특구 지정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려면 최소한 주요 선진국들과 비슷한 수준의 규제가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보다 못한 규제특구로 굳이 갈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한국은 블록체인 산업의 리더로 주목받았다. 토종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해외에서 막대한 투자를 받았으며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세계 수위권을 다퉜다. 그러나 규제가 발목을 잡은 탓에 미국·일본에 밀려 주도권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부산이 블록체인 자유규제특구로 지정된 24일 뉴욕주 금융서비스국(NYDFS)은 암호화폐 라이선스 전담 부서를 신설했다. 암호화폐 소비자 보호와 함께 암호화폐 규제를 이끌겠다는 복안이다. 로이터는 지난 18일 일본 재무성과 금융청이 직접 암호화폐 결제 네트워크를 만들 예정이며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승인까지 마쳤다고 보도했다.업계 관계자는 "암호화폐 관련 기준을 발빠르게 만들어나가는 해외 선진국들 행보와 비교하면 '규제자유특구'를 지정했지만 제자리걸음 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대조된다"고 토로했다.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