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액티브] "'벗은 여성'이 아니라 '한명의 인간'의 몸짓"

전업 누드모델 김경진씨 "벗은 몸이 성적으로 취급되지 않아서…"

'노브라' 논란에서 드러난 것처럼 여성이 신체를 드러내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에서 스스로 몸을 드러내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여성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를 받아들이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으로써 누드모델 일을 시작했다"는 4년 차 누드모델 김경진(29)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처음부터 모델을 꿈꾸진 않았어요"
모델 활동을 하기 전에 영상을 제작했다는 김씨는 성폭행 피해자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이었다.

다큐멘터리에는 성폭행 피해 경험이 있는 자신의 이야기 역시 담을 생각이었다. 성폭행 피해를 본 뒤에도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쩐지 망설여지는 자신에게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정말 잘 사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성폭행은 몸에 일어나는 피해잖아요.

피해 이후로 제 몸이 망가졌다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않았어요.

결국 저 자신을 사랑하려면 제 몸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했죠"
이후 몸을 움직이는 춤과 요가를 배워 보고 수영도 해봤지만 큰 감흥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 웹진에서 누군가가 올린 누드모델 후기를 읽고 마음이 끌렸다고 했다.

"타인 앞에서 나의 의사로 벗은 몸을 드러내고, 나의 벗은 몸이 성적으로 취급되지 않는 경험이 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김씨는 자신을 소개할 때도 '누드모델' 대신 '네이키드 아트 모델'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누드모델은 벗은 몸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시대에 생긴 용어라 새로운 명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현대에서 몸은 훨씬 더 다양한 의미를 가지니까요"
김씨는 브래지어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도 여성의 벗은 몸이 '야하다'는 생각이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브래지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상은 젊은 여성이에요.

중장년층 또는 노년층이 착용하지 않았을 때보다 젊은 여성이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을 때 반응이 더 부정적이죠. 젊은 여성의 몸을 더 성적으로 보기 때문이에요"
젊은 여성의 신체를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적 통념이 젊은 여성은 꼭 브래지어를 착용해 신체를 가려야 한다는 통제로 이어진다는 것.
김씨도 3년째 브래지어 없이 살고 있다.

처음부터 사회 운동의 목적으로 브래지어 착용을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브래지어로 인한 일상적인 불편도 있었지만 직업적인 이유가 더 컸다.

몸에 울퉁불퉁한 브래지어 자국이 남는 것이 싫었기 때문. 다른 모델 중에는 몸에 자국을 남기지 않으려고 30분 일찍 와서 브래지어를 풀고 대기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김씨는 그 시간에 포즈에 대해 고민하거나 긴장을 푸는 데 집중하고 싶었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나"는 생각이 들고부터 노브라로 지내고 있다.

'미주신경성 실신'이라는 질병 때문이기도 했다.

브래지어를 착용한 상태에서 증상이 나타나면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들다가 실신 직전까지 가곤 했다.

증상이 나타나려 할 때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등에 손을 가져가 훅을 푸는 일이었다.

브래지어에서 벗어난 지금은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가슴 답답함은 거의 사라졌다.

누드모델의 일이란 곧 "몸과 함께 한계에 부딪히는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정해진 시간 동안 같은 자세를 오래도록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정 포즈를 취하는 경우 짧게는 7분 길게는 20∼30분 정도를 버텨야 한다.

5분 내외로 이뤄지는 크로키 포징(posing·자세를 잡는 일)은 멈춘 채로 몸의 역동성을 표현해야 해서 근육과 뼈에 부담을 준다.

특히 자세를 잡을 때 두 다리를 교차해서 몸을 지지하는 습관이 있는 김씨는 무릎 안쪽에 멍이 자주 든다고 했다.

하지만 멍 자국을 부끄러워하지는 않는다.

김씨에게 멍은 "예술가인 동시에 몸으로 먹고사는 신체 노동자라는 흔적"이기 때문이다.

요즘 김씨는 자신과 같은 신체 노동자의 몸에 남은 흔적을 조명하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칼을 오래 만져서 색이 변한 주방 노동자의 손끝, 대형마트 계산원의 핏줄로 뒤덮인 종아리, 공사 현장에서 짐을 나르는 노동자의 삐뚤어진 어깨 같은 신체 노동자의 몸을 들여다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 몸에 새겨진 시간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글과 사진을 통해서 하려고 합니다.

전형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겨진 몸이 아닌 몸들 또한 아름답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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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