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韓·日 갈등과 서희의 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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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기 <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k1625m@naver.com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일본의 부품소재 수출규제로 한·일 갈등이 심화하면서 우리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부에선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펼치는가 하면, 정부는 부품소재산업 육성책을 마련하면서 협상 방안을 찾고 있다.
고려 서희 장군의 담판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고려 성종 993년, 거란의 소손녕은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한다. 고려는 현재의 평양 이북 땅을 떼어주고 화친하자는 화친파와 항전하자는 항전파로 갈리는 등 혼란에 빠진다. 이런 와중에 서희 장군은 위험을 무릅쓰고 소손녕을 찾아가 협상해 군대를 물러가게 하고 강동 6주도 되찾는 성과를 거둔다. 합리적이고 현명하면서도 용기 있는 서희의 협상전략 덕분이었다.그는 거란의 침략 원인을 냉정히 분석했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당시 송나라 정벌을 원하던 거란은 송나라와 동맹인 고려의 입장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고려를 먼저 무력화하려 했던 것이다. 서희는 거란의 입장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했다.
고려의 목표도 명확히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송나라와의 동맹관계 고수라는 명분보다는 실리를 챙기는 것이 고려의 목표라고 생각했다. 그는 송나라와의 관계를 청산하겠다는 입장을 내놓는다.
협상에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안과 양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정하고 대내 협상의 중요성도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침략 배제와 강동 6주 재획득이라는 최선의 안을 생각하고 있었다. 또 고려 내 친송파 제압을 위한 대내 협상용 선물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강동 6주를 달라고 소손녕에게 제의했다.협상이란 일방의 완승이나 완패가 아니라 호혜적 안을 찾는 과정이란 점도 이해하고 있었다. 고려는 강동 6주라는 실리를 얻고 거란은 고려가 송나라와의 관계를 청산한다는 명분을 얻었다. 서로 이익이 되는 결과를 도출한 것이다.
협상은 전략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이해했던 것 같다. 느닷없이 찾아가 협상을 주도함으로써 소손녕이 전략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줄였다. 소손녕이 서희의 생각에 쉽게 동의하도록 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서희가 생각했던 선택지가 소손녕에게 사전 노출되지 않은 점이다. 보안을 유지하면서 고려의 협상안을 전략적으로 제시해 고려의 목표 달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합리적이며 명분에 집착하지 않고 국민의 실리를 찾는 용기 있는 서희의 이런 담판이 지금의 한·일 갈등을 푸는 데 큰 교훈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