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권 문서 또 꺼낸 日 "징용배상 끝난 일" 되풀이

韓 "개인 청구권은 소멸 안 돼
日 기업이 배상해야"

日, 자국언론 상대 여론전
2차 보복 명분 쌓기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김연철 통일부 장관(오른쪽)이 30일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선 일본의 경제보복과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러시아의 독도 영공 침범 등이 논의됐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일본 정부가 자국 언론을 대상으로 여론전을 전개하고 있다.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경제협력협정(이하 한일청구권협정)의 협상 기록을 자국 언론에 공개하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기존 주장을 반복하고 나섰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 우대국)에서 제외하며 ‘2차 보복’에 나서기 전 ‘명분쌓기’에 들어간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한국 정부뿐 아니라 일본 내에서도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내부결속 도모하는 日 정부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지난 29일 일본 출입기자단에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협상 당시 작성된 한국 측의 ‘대일청구요강’과 협상 의사록 등 2건의 문건 일부를 공개했다.

일본 외무성은 8개 항목의 청구 요강 중 ‘피징용 한인(징용 피해자)의 미수금, 보상금 및 그 밖의 청구권 변제를 청구한다’는 내용 등을 근거로 한국 측이 한일청구권협정을 맺으면서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받았으며, 당시 지급된 유·무상 차관 등에 징용 피해자 위자료가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강제징용 피해 배상 문제는 이미 한일청구권협정 때 해결된 일이며, 한국 대법원 판결은 청구권협정을 침해하는 국제법 위반이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일본 정부는 “징용공 배상은 한국 정부가 하기로 했다”고 반복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30일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 외무성이 공개한 한일청구권협정 협상 관련 기록은 새로운 문장이나 자료를 공개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일본 측 생각을 대외적으로 설명해 올바른 이해를 하도록 하는 것은 정부로서 당연히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일본이 단일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일본 내부에서도 비판 나와

한국 대법원은 일본 정부의 주장과는 다른 판결을 이미 내렸다. 대법원은 앞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배상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못박았다.

대법원은 작년 10월 말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한일청구권협정에서 결정한 것은 한·일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에 따라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 수행과 직결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이 아니다”고 결정했다. 김재환·김선수 대법관도 보충의견을 통해 “대일청구요강 내용은 노동의 대가로 지급되는 임금 등 재산상 청구에 한정된 것이고, 불법적인 강제징용에 따른 위자료 청구권까지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보상금’이란 단어는 적법한 행위를 전제하는 법적 용어이므로, 식민지배의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이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특히 징용피해자의 개인청구권 소멸 여부에 대해 대법원은 “국가가 국민 개인의 동의 없이 개인청구권을 직접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근대법의 원리와 상충한다”며 일본 측 주장을 정면으로 논박했다.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시키기 위해선 조문상 명확한 근거가 필요한데 청구권 협정에는 개인청구권 자체의 포기나 소멸에 대해 아무런 규정도 두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 철회 서명운동을 이끌고 있는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 등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포기된 것은 국가의 외교 보호권이지 개인청구권은 아니다”며 한국 측 입장에 힘을 싣고 있다. 고노 다로 외무상이 작년 11월 14일 중의원(하원)에 출석한 자리에서 ‘개인청구권은 소멸된 것이 아니다’고 한 점 등도 한국 측 입장에 힘을 싣는 발언이다. 일본 최고재판소도 2007년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 판결에서 “외교적 보호권은 포기됐지만 개인의 실체적 배상청구권은 살아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김창록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대일청구요강에는 ‘강제동원’이 아니라 ‘피징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미수금’과 ‘보상금’도 법적인 근거를 전제로 한 것”이라며 “1965년 당시엔 강제동원이란 불법 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고 한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신연수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