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다룬 1919년 소설 '피눈물' 작자는 이광수"

학술지 '근대서지'서 최주한 서강대 연구원 주장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펴낸 '독립신문'에 1919년 8∼9월 연재된 단편소설 '피눈물' 작자가 춘원(春園) 이광수(1892∼1950)라는 주장이 또다시 제기됐다. 최주한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근대서지학회가 펴내는 학술지 '근대서지' 최신호에 실은 글 '독립신문 소재 단편 피눈물에 대하여'에서 "1910년대 이광수 작품과의 연속성, 독립신문 소재 사설과 문체적 동질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건대 피눈물 저자는 이광수가 분명하다"고 밝혔다.

피눈물은 "允燮(윤섭)은 日人(일인) 消防夫(소방부)의 鐵鉤(철구)에 찔니인 머리를 運動帽(운동모)로 꼭 가리우고"로 시작해 "이날 밤에 共同墓地(공동묘지)에서 萬歲(만세) 소리가 나다"로 끝난다.

3월 5일 경성 만세 운동을 배경으로 쓴 작품으로, 작자가 사용한 필명은 기월(其月)이다. 앞서 김주현 경북대 교수는 지난 4월 춘원연구학회 학술대회에서 문체를 근거로 피눈물 저자가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신문 창간에 관여한 이광수라는 견해를 내놓았는데, 당시 저자가 주요한이라는 반론도 나와 결론이 도출되지는 않았다.

김 교수 시각에 동의한다는 최 연구원은 춘원 대표작으로 꼽히는 '무정'과 피눈물 도입부가 비슷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주인공 윤섭은 피로와 출혈로 쓰러질 듯 전동 골목으로 걸으면서도 머릿속에는 온통 시위운동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며 "이 첫 장면을 대하면서 경성학교 영어교사 형식이 선형을 가르치기 위해 안동 김장로의 집으로 가며 이런저런 상념에 젖는 무정 대목을 연상하지 않기란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내면에 빠져든 인물의 의식을 일깨우는 급작스러운 장면 전환을 통해 서술자가 사건을 진행하는 방식도 무정과 그대로 닮았다"고 덧붙였다.

최 연구원은 소설에서 순사와 여학생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는 부분에 등장하는 "普成學校(보성학교)의 大門(대문)에 큰 양(兩) 구등(球燈)은 꺼졌다"는 문장과 관련해 이광수가 1914년 보성중학을 방문하고 남긴 글에 구등이 언급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마지막 장례식 장면에 나오는 단체명 '독립청년단'에 대해선 일본 도쿄 2·8 독립선언서가 이광수를 포함한 11명의 '조선청년독립단' 명의로 발표된 점으로 미뤄 작자를 암시하는 장치라고 해석했다. 최 연구원은 또 문체를 분석해 "피눈물은 장편 무정의 계몽적 어투를 그대로 이어받은 데다 주제의식에 걸맞게 더 고양된 어조를 구사하고 있는 까닭에 독립신문 이광수 논설과도 문체적 동질성이 발견된다"며 "이광수는 논설에서 반복어구와 열거, 도치 같은 수사법을 자주 썼는데, 이러한 특징은 피눈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요한설에 대해 "주요한은 1919년 10월 4일 '송아지'라는 필명으로 수필 '추회'(追懷)를 발표했는데, 어둡고 차분한 필치가 피눈물의 선명한 주제의식이나 치밀한 구성과는 매우 이질적"이라며 "동일한 작가가 같은 시기에 이토록 상반된 경향의 작품을 쓰기는 쉽지 않다"고 비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