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연준 '보험성 금리인하'…긴축 접고 '글로벌 경기' 뒷받침

美 나홀로 호황 속 글로벌 경기둔화 주목…양적긴축 2개월 당겨 조기종료
금리인상 사이클 3년여만에 마침표…각국 중앙銀 통화완화 힘받을 듯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31일(현지시간) 10년 7개월 만에 '금리인하 카드'를 꺼내 들었다.시장의 예상대로 0.25%포인트 하향조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사실상 '0.5%포인트 빅컷'을 요구했지만 0.25%포인트씩 금리를 조정하는 일명 '그린스펀의 베이비스텝' 원칙을 따랐다.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8년 12월 이후로는 처음이다.다만 '통화완화 사이클'로 기조적으로 돌아섰는지는 아직은 예단하기 어려워 보인다.

미국 경제가 여전히 탄탄하다는 점에서 한두차례 추가적인 금리인하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장기적인 인하 사이클의 시작은 아니다"라며 "중간 사이클(midcycle) 조정"이라고 확대해석엔 거리를 뒀다.
◇ 최장기 호황 속 '보험성 인하'…파월 "보험 측면"
통상 기준금리 인하는 경기침체에 대응하는 경기부양 카드다.

연준이 금융위기 당시 기준금리를 0.00~0.25%로 인하하면서 '제로 금리'로 떨어뜨린 게 대표적이다.

최장기 호황을 이어가는 현재 상황은 사뭇 다르다.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따르면 미국은 이번 달로 121개월째 경기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기존 120개월(1991년 3월~2001년 3월)을 넘어서는 역대 최장 기록이다.

분기 성장률이 1분기 3%대에서 2분기 2%대로 낮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미국 경제는 탄탄하다.

실업률은 반세기만의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뉴욕증시는 잇따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연준이 꺼내든 명분은 이른바 '보험성 인하'(Insurance Cut)다.

글로벌 무역갈등과 맞물려 유로존과 중국을 중심으로 경기둔화가 본격화하는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로 글로벌 연계성이 한층 강화되면서 미국이 '나홀로' 정책을 펴기는 어려워진 현실을 고려했다는 입장이다.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도 지난 28일 금리 인하를 지지하면서 "미국은 섬이 아니라 세계 경제의 일부"라고 언급했다.

연준은 1995년과 1998년에도 보험성 인하를 단행한 바 있다.

당시 연준은 0.25%포인트씩 3차례 금리를 단행했고, 경기하강을 피할 수 있었다.

파월 의장도 기자회견에서 "분명히 보험의 측면이 있다"고 언급했다.

역설적으로, 기준금리가 불과 2%대의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했다.

경기침체가 닥쳤을 때, 인하 여력이 적은 만큼 선제적으로 금리를 내려서라도 침체를 막는 게 합리적이라는 의미다.

그밖에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치 2%를 지속해서 밑돌고 있는 데다, 금융시장의 금리인하 기대감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점도 무시하기 어려운 요인이다.
◇ 美 통화정책 전환점…유럽·日 뒤따를듯
금리인하의 배경을 제쳐두더라도, 미국의 통화정책이 중대 변곡점을 맞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무엇보다 금융위기 직후 시중에 풀린 풍부한 유동성을 흡수하는 '통화긴축 사이클'이 3년여만에 일단락됐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연준은 2015년 12월 7년 만에 처음으로 금리를 올린 것을 시작으로 긴축기조로 돌아섰다.

이어 2016년 1차례, 2017년 3차례, 지난해에는 4차례 각각 금리를 올렸다.

모두 0.25%포인트씩 9차례 금리를 올리면서 기준금리를 2.25~2.5%까지 끌어올렸다.

연준은 미·중 무역갈등의 불확실성이 부각된 올해 들어서는 지난달까지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유보하는 태도를 취해왔다.

연준이 통화완화 정책으로 완벽하게 '유턴'했는지 여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일단 기존 긴축정책에는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또 다른 '긴축 카드'인 보유자산 축소를 2개월 앞당겨 종료하기로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보유자산 축소란 연준이 보유한 채권을 매각하고 시중의 달러화를 회수하는 '양적 긴축'(QT) 정책이다.

채권을 사들이면서 돈을 풀어 시중에 풍부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 완화'(QE)의 정반대 개념이다.

앞서 연준은 보유자산 축소 정책을 9월 말에 종료하기로 했다.

예정된 종료 시점을 눈앞에 두고, 굳이 조기종료를 부각한 것은 '긴축정책을 종료했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연준의 기조 전환은 글로벌 각국 통화당국의 행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연준이 선제적으로 금리인하를 단행하면서 주요국 통화 당국들을 이끄는 모양새가 연출되는 셈이다.

앞서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번 달 기준금리를 현행 0%로 유지하면서도 내년 상반기까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놓은 바 있다.일본은행도 단기 정책금리를 마이너스(-) 0.1%로 유지하면서 장기 금리(10년물 국채)를 계속 0% 정도로 억제한 상황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