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화이트리스트 제외 'D-1'…"삼성은 버텨도 우린 못버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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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 받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보다무선통신장비를 제조하는 대구의 중소기업 A사는 부품의 절반 이상을 일본에서 조달한다. 특히 중앙처리장치(CPU) 분야에선 일본의 기술 완성도가 높은 데다 1990년대부터 거래를 시작하는 등 오랜 기간 다져온 관계 때문에 '조달 안정화'를 위해 100% 의존하고 있었다.
'거래처 다변화' 어려운 중소기업들이 더 걱정
A사 대표는 "현재 일본에서 들여온 CPU 재고가 4~5개월치만 남은 상황"이라며 "울며 겨자 먹기로 수입처 다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바꾼다고 해도 제조 라인을 전부 수정해야 해 비용 걱정이 크다"고 토로했다.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수출 간소화 우대국)' 한국 배제 결정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일본으로부터 소재와 부품 의존 비율이 큰 국내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삼성·SK·LG 등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래처 다변화에 취약한 중소기업들은 사실상 대안이 없다고 호소했다. '외교적 해결'에 실낱 같은 기대를 거는 상황이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업계에 따르면 한국이 수입하는 주요 전략물자 430개 품목 중 일본 수입 비중이 50% 이상인 품목은 32개, 70% 이상인 품목이 16개, 80% 이상 품목 12개로 집계된다.
앞서 일본이 수출규제 품목에 포함시킨 포토레지스트(92.9%)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84.5%)가 70% 이상 항목에 들어 있는 소재다. 불화수소는 일본 수입 비중이 32.1%이지만 반도체용 고품질 불화수소로만 좁히면 일본 의존도가 역시 90% 이상으로 높아진다.일본이 오는 2일 각의(국무회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안건(수출무역 관리령 개정)을 통과시키면 수출 규제를 받는 품목은 1100여개로 대폭 늘어난다. 여기에는 첨단소재, 전자통신 센서 등까지 포함된다.
대기업은 거래처 다변화를 통해 대응 방안을 강구하는 반면 중소기업의 경우 수출 규제 여파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중국과 유럽산 소재로 눈을 돌리고 있다. 반도체 공정의 필수 소재인 불화수소의 경우 이미 중국산 수입 비중이 일본산보다 많은 데다 품질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불화수소 원료인 '형석'은 전세계 생산량의 60%가 중국에서 채굴된다.또 이들 기업은 국내 소재기업을 통해 불화수소 등을 공급 받아 일부 라인을 세운 뒤 반도체 시제품을 만들어 테스트하고 있다.
경남 창원에서 금형업체 B사를 운영하는 한 임원은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 달리 납품일자를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통과 지연 등이 발생하면 컨테이너가 정박하는 날짜를 특정하기 어렵다. 일본으로부터 부품을 조달 받는 중소기업들은 완전히 밥줄 끊기게 생겼다"고 말했다.
신호전송기기를 만드는 C사 관계자도 "소재를 바꾸면 라인을 다시 꾸려야 한다. 대기업의 경우 수십개 라인을 운영하고 있어 일부를 멈추고 테스트하는 게 가능하지만 중소기업은 그게 안 된다"며 "재고가 떨어지기 전에 일본 외에 안정적으로 공급 받을 수 있는 거래처를 트는 데 최소 1년 이상 필요하다"고 털어놓았다.이 관계자는 "현재 수입하는 품목이 전략물자 리스트에서 빠진다고 해도 현지 회사 입장에선 일본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재고가 떨어지기 전에 외교적 해결책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달 중소기업중앙회가 반도체 부품 등 중소 제조업체 269곳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일본 정부 수출규제를 6개월 이내로만 견딜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이 59%에 달했다. 또 수출규제에 대한 자체 대응책을 묻는 질문에는 "대응책이 없다"는 응답이 46.8%로 가장 많았다. 대다수 중소기업이 현 상황에 대처할 준비가 안 된 것으로 중기중앙회는 분석했다.
중소기업들은 그나마 대책으로 대체재 개발(21.6%), 거래처 변경(18.2%), 재고분 확보(12.3%) 등을 언급했다.반도체 소재를 국내에서 개발하거나 제3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등 일본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원론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소재 거래처 다변화에 "1년 이상 소요된다"는 응답이 42%, "6개월에서 1년 정도 소요된다"는 응답은 34.9%였다. "6개월 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업체는 23.1%에 그쳤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