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꼿이 서서 벙커샷?…살짝 주저앉는 느낌으로 자세 낮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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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3국 투어 챔프벙커. 듣기만 해도 인상이 찌푸려지시죠. 오죽하면 벙커샷의 가장 좋은 기술이 ‘벙커 피하기’라고 했을까요. 까딱하면 오비나 해저드보다 더 심각한 사고가 나는 곳이 바로 이 벙커죠. ‘골프 천재’ 김효주(24)가 에비앙챔피언십 14번홀(파3)에서 벙커 턱에 박힌 공을 빼내지 못해 트리플 보기를 적어낸 것도 그런 사례고요. 김효주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벙커샷 성공률 3위(62%)인 ‘벙커 테크니션’인데도 말이죠. 스탠스까지 잡기 어려운 경사면 벙커 턱에다 하필 공이 모래 속에 깊게 박히는 ‘에그 프라이(egg fry)’까지 겹치다 보니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 어려웠던 듯합니다.
김영의 달콤한 골프
(24) 벙커샷의 급소 (상) 셋업이 전부다
벙커 탈출 안 되는 이유들일반적으로 아마추어 골퍼가 벙커샷에 약한 것은 물론 연습량 부족입니다. 벙커샷 연습만 1시간 이상 해 본 분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벙커의 달인’으로 불리는 최경주 프로의 메시지도 분명합니다. “일단 3000개만 먼저 쳐보고 얘기하라”는 거죠.
문제는 연습량은 둘째치고 벙커샷을 준비하는 기본 셋업부터 잘못된 경우가 정말 흔하다는 겁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부터 한번 꼽아볼게요. 가장 흔한 게 몸을 낮추지 않고 드라이버나 아이언샷 하듯 ‘뻣뻣하게 서서’ 벙커샷을 하는 겁니다. 또 있습니다. 일반적인 칩샷을 하듯 왼발만 살짝 열거나 왼쪽 어깨만 살짝 열고, 양발도 좁게 벌리고, 공을 오른발 쪽에 가깝게 놓거나, 클럽헤드를 ‘열어 잡지 않고 잡은 뒤 여는’ 동작 등입니다.
벙커샷은 기본적으로 동작을 절제하는 ‘고요한 샷’이에요. 몸이 앞뒤 좌우로 크게 움직이는 건 실수를 늘려준다는 거죠. 그래서 양발을 넓게 벌려 서고 무릎과 허리를 적절히 굽혀 체중이 아래로 착 가라앉은 듯한 느낌으로 어드레스를 하는 게 좋습니다. 크레인이나 이삿짐센터의 사다리차가 사방으로 보조다리를 펼쳐 차체를 굳건히 땅에 고정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샤프트가 당연히 뉘어지고 지면과 더 가까워지겠죠. 이렇게 해야 공 밑의 모래를 클럽 헤드로 쉽게 떠낼 수 있는 구조가 됩니다. 발을 모래 속으로 약간 파묻는 것도 스윙 동작에서 몸체가 흔들리는 걸 줄여주는 필수 준비 동작인데, 이것조차 안 하는 골퍼가 너무도 많더라고요.두 번째가 타깃 라인보다 왼쪽으로 30도가량 비껴서는 것입니다(양발과 몸통이 다 왼쪽을 바라봐야 함. 일반 칩샷 어프로치처럼 왼발만 열면 안됨). 클럽페이스를 여는 만큼 얼라인먼트를 왼쪽으로 조정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야 벙커샷한 공이 타깃 쪽으로 날아가게 되거든요.
주의해야 할 게 이렇게 몸을 비껴서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공의 위치가 처음보다 오른쪽으로 밀려나는 실수입니다. 공이 명치선보다 오른쪽에 놓이면 클럽이 공 밑으로 잘 빠져나가지 않고 박히거나, 공부터 때릴 확률이 높아집니다. 어드레스를 하러 들어갈 때부터 공을 왼발 뒤꿈치선상에 놓는 게 좋습니다. 드라이버를 칠 때 공을 놓는 위치와 비슷하죠.
또 다른 셋업상의 실수는 ‘핸드퍼스트’ 동작입니다. 체중을 왼발에 좀 더 실으려다가 손뭉치가 공보다 타깃 방향으로 더 나가는 것이죠. 헤드의 날(리딩에지)이 모래 속에 박혀 저항이 커지고, 결국 벙커 탈출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셋업입니다. 벙커샷할 때 그립을 잡은 양 손목의 각도는 잘 살아 있어야 합니다.마지막으로 ‘페이스 잘 열기’입니다. 바운스(클럽헤드의 바닥 부분)가 모래를 불도저처럼 잘 밀어내고, 탄도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열기를 잘 못해 애를 먹는 아마추어분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너무 안 여는 분보다 너무 많이 여는 분이 훨씬 더 많습니다. 시계를 생각하면 스퀘어 상태에서 1시(30도) 정도로만 살짝 열어도 충분한 게 벙커샷입니다. 홀컵이 벙커 바로 코앞에 있어서 높은 탄도가 필요하고, 비거리도 최소화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말이죠.
벙커샷 문제 자가 진단법
벙커샷 연습도 하고 문제점도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알려 드릴게요. 5분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어요. 모래 위에 선을 하나 긋고 그 선을 공 뒤의 모래라고 생각하고 클럽헤드로 맞혀보는 겁니다. 쉬울 것 같지만 실제 해보면 선을 맞히는 게 정말 힘들다는 걸 느낄 겁니다. 열 번 중 다섯 번 이상 선을 정확히 맞혀낸다면, 벙커샷에 소질이 있다고 믿으셔도 됩니다. 대개는 선의 10~20㎝ 좌우를 때리게 되죠. 이 직선을 맞히는 게 익숙해지면 공을 놓고 진짜 벙커샷을 해보세요. 놀라운 변화가 생길 겁니다.
김영 < 골프 인스트럭터·방송해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