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증유의 경제·안보 위기…국가를 전면 혁신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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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끝내 보복…'정치'로 비롯된 대립이 기업에 날벼락일본 정부가 끝내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면서 양국관계는 1965년 수교 이후 최악의 대립·갈등 국면에 들어섰다. 서로가 강(强) 대 강(强)으로 맞서면서 ‘멀고 험한 길’을 기어코 택한 것이다.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은 급등하는 등 국내 금융시장의 민감한 반응도 심상찮지만, 우리 산업계 곳곳에 미칠 엄청난 충격은 가늠조차 어렵다. ‘전면 경제전쟁’이란 표현이 과하지 않은 상황이다. 일파만파로 지역 안보협력에까지 파장이 미칠 수 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정부와 국회, '강 대 강' 맞대응이 최선인지 숙고해야
'편가르기' '남탓' 멈추고 진정한 국가혁신에 나서야
이 와중에 북한은 하루 걸러 또 발사체를 쏘아대며 노골적 도발을 자행하고 있다. 8일 새 세 차례 이어진 무모한 겁박이다. 북한 김정은은 “이 무기의 과녁에 놓인 세력에게 고민거리가 될 것”이라며 대한민국을 대놓고 능멸했다. 북한이 신형 방사포를 쏘았다는데도 “탄도미사일로 본다”는 식의 반응을 보면 ‘철통 안보’에 대한 우리 군의 의지와 역량도 미덥지 못한 게 사실이다. 미증유의 경제·안보 복합위기가 심화하고 있다.무엇보다도 퇴로가 안 보이는 한·일 관계가 걱정이다. 문제와 갈등은 양국의 정부가 일으키고, 애꿎은 기업들이 날벼락을 맞는 현실이 안타깝다. 자해(自害)를 불사하는 일본의 수출규제에는 아베 정권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겠지만 한국의 정부 여당에도 그런 요인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대화와 협상, 외교를 외면한 채 제 목소리만 낸 결과는 언제나 무서운 법이다. 어떤 형태든 국가 간 무한 대립의 결과는 민초들의 극한적 고통이었다. 가뜩이나 미·중 간 무역전쟁의 확전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중앙은행 발(發) 금리인하 경쟁과 통화전쟁 조짐까지 보이면서 침체된 우리 경제를 연일 험지로 몰아넣고 있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이 확전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함께 수습해야 하는 현실적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해 “상응조치를 단호하게 취할 것”이라며 강경대응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대응하는 게 최선인지도 짚어보기 바란다. 이보다는 오는 28일부터 시행되는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실행되지 않도록 남은 기간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세워뒀다는 ‘단계별 대응’에 대해서도 관련 업계나 국민들과 내용을 최대한 공유해야 실효성이 제고될 수 있다. ‘일본 대응 예산’이 당초 1200억원에서 8000억원으로 급증했다가 다시 2732억원으로 깎이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면 국회도 정부도 미덥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업이 스스로 소재와 부품을 개발할 여지는 과잉 규제로 다 묶어놓고 뒤늦게 이 정도 예산으로 언제까지, 무엇을, 어떻게 개발하겠다는 것인지 극히 의문이다. 정부 대응도, 국회 예산심의도 ‘죽창과 의병’ 수준에서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약육강식의 냉엄한 국제질서에는 영원한 우방도 없고, 경제·안보의 구별도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참에 ‘네탓’을 입에 달고 사는 정략적 편가르기부터 일소해야 한다. 자주국방과 자립경제를 위해 자강불식(自强不息)으로 국가를 혁신해야 한다. 준비도 없이 덜렁 갔다가 문전박대 당하고 온 국회의 일본방문단 같은 보여주기 정치, 쇼 행정은 떨칠 때도 됐다. 대한민국 품격의 문제다. 정치와 국정운영 방식이 지금이라도 제대로만 혁신된다면 그나마 적은 대가로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위험+기회’라는 위기(危機),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국민의 안위가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