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치엘비 이어 신라젠도…K바이오, 글로벌 출시 문턱서 또 제동

"신라젠, 美서 항암제 '펙사벡' 임상 3상 중단 권고 받아

바이엘 넥사바와 병용임상 위기
신약 효용성 '중간 평가' 못 넘어
국내 간판급 바이오벤처 기업들이 신약 개발의 마지막 관문인 글로벌 임상 3상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있다. 에이치엘비에 이어 신라젠도 미국 임상 3상을 접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임상 중간평가에서 중단을 권고받았기 때문이다.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 허가 취소,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검찰 수사 등 온갖 악재들이 터지는 가운데 국내 대표 신약후보물질의 연이은 임상 실패로 바이오산업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

임상 3상 중단 위기 놓인 펙사벡신라젠은 “미국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DMC)가 간암을 대상으로 미국에서 시행 중인 펙사벡과 넥사바의 병용 임상 3상의 무용성 평가에서 임상 중단을 권고했다”고 2일 공시했다. 신라젠은 DMC의 권고 내용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보고할 예정이다. DMC는 임상 참여 연구자 중 일부를 선정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점검하는 독립위원회다.

미국 토머스제퍼슨대가 1999년 원천기술을 개발한 펙사벡은 우두 바이러스 유전자를 재조합한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다. 암세포를 바이러스에 감염시킨 뒤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신라젠은 2015년 10월부터 펙사벡과 넥사바의 글로벌 병용 임상 3상을 해왔다. 시중에 판매 중인 바이엘의 간암 치료제 넥사바와 펙사벡을 함께 사용해 치료효과를 더 높이기 위한 것이다. 펙사벡과 넥사바를 투여한 300명과 넥사바만 투여한 환자 300명의 전체 생존율을 비교 분석하는 방식으로 임상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 중간평가에서 기대치 않은 결과가 나오면서 이번 임상이 사실상 실패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허가기관인 FDA와는 독립된 기구지만 DMC가 임상 중단을 권고한 만큼 3상 임상을 더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안갯속으로 접어든 펙사벡

신라젠은 펙사벡-넥사바 병용 임상에 대한 진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신라젠은 오는 4일 오후 향후 계획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신라젠이 진행 중인 리브타요, 옵디보, 여보이 등 다른 암 치료제와의 병용 임상에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다. 펙사벡만으로 암을 치료하는 단독 요법은 고형암 환자의 수술 전 선행요법으로 임상을 하고 있다. 신라젠은 지난해 5월 미국임상종양학회 학술대회에서 고형암 환자들에게 펙사벡을 투여했을 때 안전성과 내약성이 나타났다는 임상 1상 결과 일부를 공개했다.

신라젠이 진행 중인 임상은 펙사벡-넥사바 병용 임상을 제외하면 대부분 임상 1상 단계다. 업계에서는 1번 타자 격인 펙사벡-넥사바 병용 임상에서 부정적 결과가 나온 것만으로 다른 임상까지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라는 반응이다. 병용 임상 약물이 다른 만큼 효과도 다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어서다.바이오업계·증시에도 악영향

임상 중단 권고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날 신라젠은 코스닥시장에서 가격하한폭(1만3350원·29.97%)까지 떨어진 3만1200원에 마감했다. 메디톡스(-5.95%) 제넥신(-5.92%) 헬릭스미스(-5.77%) 메지온(-3.58%) 등 주요 제약·바이오주도 동반 하락했다. 증권업계에선 바이오주 전반의 투자심리가 약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임상 3상 결과 발표를 앞둔 주요 바이오주 투자자들의 불안은 커진 상태다. 이태영 KB증권 연구원은 “앞선 악재들과 별개로 국내 바이오산업은 연구개발 투자 규모가 전방위적으로 확대되면서 기술이전 성과도 늘고 있다”며 “지나친 우려 확산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오업계에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가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이라는 시각이 많다. 국내 바이오기업이 글로벌 신약 개발 마지막 관문인 임상 3상에 도전한 곳도 신라젠 에이치엘비생명과학 헬릭스미스 등에 불과할 정도로 국내 바이오산업은 아직 성장 초기단계다.이승규 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다국적 제약사도 임상 3상에 진입한 뒤 신약 허가를 받을 확률이 60% 정도밖에 안 된다”며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글로벌 임상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익/김동현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