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68억 깎은 5조8269억…추경, 99일 만에 국회 '지각 통과'

여야 원내대표 담판으로 추경 총액 결정

국채 발행 3000억 줄이고
경기대응예산 1.3조 가량 깎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설명을 마친 뒤 국회의원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가 올해 추가경정예산을 5조8269억원 규모로 확정해 의결했다. 정부 원안보다 총 8568억원이 순삭감된 규모다. 국회는 다만 정부로부터 추가로 요구받은 일본 경제 보복 대응 예산 2732억원은 원안 그대로 통과시켰다. 국회 제출 이후 이날 통과까지 99일이 걸린 데다 마지막까지 여야가 세부 증감 내역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면서 ‘늑장 추경’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

99일 만에 추경 통과
국회는 2일 본회의를 열어 재석 228명 중 찬성 196명, 반대 12명, 기권 20명으로 5조8269억원 규모 추경안을 통과시켰다. 앞서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김재원 위원장(자유한국당)과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이종배 한국당, 지상욱 바른미래당 간사가 여야 교섭단체 3당 예결위 간사회의에서 합의한 규모 그대로 통과됐다. 당초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 6조6837억원에서 약 8568억원이 순삭감된 액수다.

우선 야당 요구에 따라 희망근로지원 사업과 산업은행 출자, 신재생에너지 보급 부문 등에서 1조3876억원이 깎였다. 대신 정부가 추가로 요청한 일본 경제 보복 대응 예산 2732억원은 신규 증액됐다. 여기에 강원 산불과 경북 포항 지진 대응, 노후 상수도 교체 등을 위한 예산까지 총 5308억원이 새롭게 담겼다.문재인 정부 들어 시행한 추경 중 국회 심사 과정에서 총액이 가장 많이 줄었다. 2017년 추경 때는 1537억원, 지난해는 218억원이 국회에서 순삭감된 것과 비교했을 때 올해 순삭감액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다. 정부안에서 총 13%가량이 삭감됐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현금 살포성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결과”라며 “말도 안 되는 예산을 크게 줄이고 민생을 위한 예산을 증액하는 내용으로 많이 수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야당이 삭감을 주장한 3조6409억원어치 국채 발행은 3066억원을 축소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 외에도 일본 경제 보복에 대응하기 위해 소재·부품 국산화 등에 1조8000억원의 목적 예비비를 추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톱다운 방식으로 총액 결정이번 추경은 예결위 논의가 아니라 원내대표들 담판으로 규모가 결정됐다. 원내 지도부가 큰 틀에서 총액을 확정해 주면 예결위 여야 간사들이 세부 항목을 조정해 총액을 맞추는 ‘톱다운’ 방식의 이례적인 예산 심사였다. 3당 원내대표들은 이날 새벽 1시께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지만, 세 시간 가까이 구체적인 내용을 함구한 채 합의 내용과 발표 형식 등을 두고 추가 물밑 협상을 이어갔다.

예결위 관계자는 “보통 예산안은 예결위 차원에서 세부적인 조율을 거쳐 여야 지도부가 최종적으로 합의하는 형식을 취한다”며 “이번 추경 합의 방식이 일반적이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지난 4월 25일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된 후 여야는 이견을 좁히지 못하며 극심한 진통을 겪어왔다. 민주당은 6조6837억원 규모 원안 처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당은 ‘총선용 선심성’으로 규정한 정부 일자리 사업과 적자국채 발행액을 중심으로 2조원 이상 대폭 삭감하자고 맞섰다. 여야가 서로를 탓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전날까지도 ‘줄다리기’를 벌이다가 야당은 정부 여당이 요구한 일본 대응 예산 2732억원을 전액 받고, 여당은 야당이 요구한 일자리 예산 등에서의 삭감을 받아들이면서 극적으로 합의에 성공했다.늑장 추경, 남은 건 집행

이번 추경안은 국회에 제출한 지 99일 만에 통과됐다.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107일이 걸린 것 다음인 역대 두 번째로 국회 계류 기간이 길었다. 당초 예상보다 추경 통과 시기가 늦어지면서 경기 부양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기획재정부는 추경안 제출 당시 5월 통과를 전제로 경제성장률이 0.1%포인트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 예상보다 통과가 3개월가량 지연되면서 경기 활성화 효과도 감소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구윤철 기재부 2차관은 “2개월 안에 추경의 70% 이상이 집행될 수 있도록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