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일본경제 워치] "나 떨고있니…"…한일 전면전에 전전긍긍하는 日기업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국과 일본이 싸워서 좋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일본 반도체 제조장비 업체 도쿄일렉트론 고위 간부)

격화일변도를 걸어왔던 한일간 대립이 결국 경제 전면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한국으로의 수출 비중이 높은 일본 기업들이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지난 2일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배제하는 본격적인 경제보복 조치를 취하면서 매출급감과 향후 고객 이탈 가능성에 속이 타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수십 년간 한국과 밀접하게 구축해온 글로벌 공급망에 심각한 균열이 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일본 산업계의 부담도 전방위적으로 확산할 전망입니다. 특히 일본 소재·부품 업체들은 한국 업체들이 조달처를 바꿀 움직임을 내비치자 일본 소재·부품업체들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한국에 주요 소재·부품을 수출하는 업체들은 한일 양국 간 경제대립이 경제활동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입니다.

당장 지난달 4일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한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3개 소재 업체들은 발등의 불이 떨어진 모습입니다.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를 생산하는 쇼와덴코는 지난달 중순 경제산업성에 수출 신청을 했지만 8월 초까지 “아직 수출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감광액인 포토레지스트를 취급하는 JSR도 지난달 말 시점까지 수출허가를 취득하지 못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 수출지연은 여러 분야로 확산할 전망입니다. 당장 여러 업체들이 수출차질 가능성을 언급하고 나섰습니다. 탄소섬유 제조업체 미쓰비시케미컬홀딩스는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수출 절차가 까다로워지고 일부 납기 지연이 발생할지 모른다”고 우려했습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한 산업용 로봇 제조업체도 한국으로 출하가 1~2개월가량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캐논도 “광학기기 수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수출 병목’현상을 우려하는 업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당장은 한국 업체들이 재고확보에 나서면서 주문이 늘었지만 언제 거래가 끊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한 화학 대기업은 삼성전자로부터 기존 1개월 치였던 재고량을 3개월 치로 늘리고 싶다는 ‘갑작스런 주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화학제품 수출업체인 나가세산업은 지난달 하순 이후 한국 업체로부터 평소보다 발주량이 2배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본격화하기 전에 한국 업체들이 재고를 확보하기 위해 주문량을 늘렸기 때문입니다. 이 업체는 지난달 수출규제 조치가 이뤄진 3개 품목을 취급하지는 않지만, 이외의 반도체 소재를 한국으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아사쿠라 겐지 나가세산업 최고경영자(CEO)는 “당장은 주문이 늘어 실적이 좋아졌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불안감이 커진 일본 소재·부품업체들은 조속한 한일관계 타결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일본 반도체산업협회와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는 지난달 30일 한일 양국 정부에 정치대립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일본 기업들은 한국 기업들의 대체 조달처 발굴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대형 반도체 장비 업체인 도쿄일렉트론 관계자는 “한국 반도체 대기업들이 일본 제품을 사지 않으면 일본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이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비철금속 업체도 한국의 반도체 업체로부터 전자 부재(部材)에 대해 “한국에서 같은 것을 조달할 수 있다면 바꿀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히타치금속도 한국 고객사가 조달처를 다양화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일본 총리가 한국에 초강경 자세로 경제보복 조치를 취한 것은 결국 일본 경제에도 적지 않은 ‘출혈’을 일으킬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과거사와 관련한 정치·외교 문제에 대해 경제보복을 하는 것은 올바른 행동이 아닐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자해에 가까운 비합리적인 행동입니다. 한일 양국의 경제 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협력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일본의 태도변화가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