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한·일 대화채널 단절…광복절이 분수령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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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6·9일 원폭피해 위령식 참석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는 한·일 간 힘겨루기가 광복절인 오는 15일 첫 분수령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청와대는 열흘 앞으로 다가온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방점이 찍혔다면 제74주년 광복절 축사는 대일 메시지에 주안점을 두겠다는 방침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 배제 결정 직후 연 긴급 국무회의에서 “가해자인 일본이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큰소리치는 상황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며 강도 높은 맞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청와대 관계자는 “올해 경축사에는 주권을 되찾은 뜻깊은 광복절을 축하하는 한편, 선열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외세와 싸우며 독립을 이뤄낸 우리나라를 또다시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길 것”이라고 내다봤다.경축사에 화해의 메시지가 포함된다면 갈등이 누그러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자발적인 광복절 태극기 달기 운동, 광화문광장 대규모 촛불집회 등을 통해 광복절을 기점으로 반일 감정이 최고조에 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아사히신문, 산케이신문 등 일본 언론 역시 광복절 당일 한국에서 대규모 반일 시위가 예정돼 있다는 점을 집중 보도하며, 광복절이 경색 일변도인 한·일관계의 방향을 결정할 주요 분기점이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문 대통령, 광복절 對日 강경 메시지 준비
10월 일왕즉위식이 변수 될 수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서 열리는 원폭피해자 위령식에 참석한다. 숙연한 분위기의 행사에서 내부적으로 한국에 대한 강경 목소리를 주장하는 보수층의 결집을 도모하는 연설을 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다음달 하순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서 한·일 정상 간 만남이 이뤄질지도 관심이다. 한·일 갈등이 중장기전으로 이어질 경우 문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 참석해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비난 여론을 환기시키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다만 한·일 정상회담은 아베 총리가 만남의 전제조건으로 한국에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해법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만큼 성사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꽉 막힌 한·일 간 대화채널이 당분간 복원되지 않을 경우 오는 10월로 예정된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각국 정상을 초청한 가운데 성대한 즉위식을 준비 중인 일본 정부는 한국 측에서도 축하사절단을 보내길 기대하고 있다. 사절단이 자연스러운 대일 특사로 일본 측과 대화할 여지가 생기는 셈이다.
다만 일본 정부가 직접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일본 민간단체와 기업들이 정부에 보조를 맞춰 ‘한국 따돌리기’에 나서면서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 일본 주요 공무원들도 아베 정권의 눈치를 보고 ‘손타쿠(忖度: 윗사람의 뜻을 읽어서 행동함)’ 처세를 할 경우, 무역 송금 비자수속 등 행정 전반으로 사실상 규제 강화 조치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박재원 기자/도쿄=김동욱 특파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