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모르는 게 약?…원리 아는 만큼 잘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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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 라이프“백스윙 때 헤드를 먼저 직선으로 빼라고 하잖아요. 왜 그래야 하는지 알고 하시나요?”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프로 출신인 최송이 연세 골프사이언스 실장(34)은 현역 시절 하루의 대부분을 연습에 할애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왜 그런 동작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이 궁금증이 운동행동심리학이란 힘겨운 학문과 싸움의 시작이었다. 그는 지난달 연세대에서 ‘골프 드라이버 스윙에서 생체역학적 피드백의 학습효과’라는 다소 난해한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일미 호서대 교수(49)에 이어 LPGA투어 프로 출신 박사는 그가 두 번째다. 그를 지난 2일 서울 남대문로 연세재단세브란스빌딩 골프사이언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최 실장은 “백스윙을 해도 왜 클럽 헤드를 먼저 빼야 하는지 모르면 나중엔 쉽게 까먹을 수밖에 없다”며 “왜 그런 동작을 해야 하는지 충분한 보충 설명이 있어야 뇌도 이를 받아들이고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결국엔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다. 헤드를 먼저 빼는 것은 몸통 회전으로 스윙을 시작하라는 신호를 주는 동시에 동작의 순서를 명확하게 하는 등의 기능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최 실장은 2009년 LPGA 2부 투어, 2010년 부분 시드를 거친 뒤 2011년 정식으로 꿈에 그리던 LPGA투어 무대를 밟았다. 2011년은 최 실장이 골프 클럽을 내려놓은 해이기도 하다. 잔부상으로 고생했고 회복 속도가 너무 더뎠기 때문이다. 선수 생활 중에도 틈틈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은 그는 골프 이론을 더 파보기로 결심했다.
'LPGA 출신 박사'
최송이 연세 골프사이언스 실장
“미국에 가서 레슨도 받았고 주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정말 열심히 했어요. 하지만 찾아온 건 슬럼프였고 내가 하는 동작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죠. 결국엔 몸이 망가지더라고요.”
최 실장은 박사과정에서 어떤 형식으로 골프를 학습했을 때 가장 빨리 실력이 느는지 연구했다. 32명의 중급자 골퍼를 4개 그룹으로 나눠 6주간 학습을 진행했다. 그 결과 스윙 만족도가 높아지고 방법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있으면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비거리와 방향성이 좋아진 것은 물론 스윙 폼에 대한 만족도까지 높아진 것. “실험 참가자들은 아마추어 특유의 스윙 폼에서 프로와 비슷한 폼으로 바뀐 것에 만족감을 나타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골프를 많이 알수록 힘들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결국 뇌에서 명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올바른 동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입증한 겁니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코치가 ‘코킹하세요’ 해서 똑같이 한다 해도 이는 흉내내는 것에 불과해요. 최상급 톱 프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정보를 적립한 선수가 그렇지 않은 선수들보다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죠.”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4·미국)가 대표적인 예다. “앞서 우즈가 한국을 찾았을 때 어떤 분이 ‘어떻게 하면 스윙 스피드를 증가시킬 수 있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어요. 그때 우즈는 피겨스케이팅을 예로 들며 공기저항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공중에서 회전할 때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팔을 몸에 붙이듯 골프도 다운스윙 때 주요 구간에서 팔이 몸에서 떨어지지 않게 해야 스피드가 증가한다고 했죠. 우즈는 실력뿐 아니라 골프에 대한 이해도 역시 ‘천재’ 수준이에요.”
골프 이론에서 나름의 일가를 이뤘지만 공부는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앞으로는 자신처럼 부상으로 조기 은퇴하는 선수들이 없도록 부상을 방지할 수 있는 ‘골프 토털 클리닉’을 통해 끊임없이 연구할 계획이다. 연세대 골프사이언스에는 골프 관련 각종 장비뿐 아니라 부상에서 회복할 수 있는 재활 기기, 검진 시스템 등이 모두 갖춰져 있다.“선수의 몸 전체를 계속해서 파악할 수 있는 ‘보디 스크리닝’ 시스템을 개발하고 싶었어요. 레슨뿐 아니라 몸에 대한 처방 및 분석 검사를 해주는 ‘토털 시스템’으로요. 제 공부가 후배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있을까요.”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