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ㅣ유해진 진심을 다해 몸 던진 '봉오동 전투'

영화 '봉오동 전투' 황해철 역 유해진
영화 '봉오동 전투' 유해진/사진=쇼박스
올해는 3.1만세운동과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그래서일까. 어느 때 보다 항일운동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았다. 배우 유해진은 그중 2개의 작품에 출연했다. 올해 1월 개봉한 '말모이'에서 일제의 눈을 피해 목숨 걸고 우리 사전 편찬 작업에 동참했던 판수 역으로 286만 관객을 동원했던 유해진은 올 여름 쇼박스의 텐트폴 작품인 '봉오동 전투'로 다시 돌아왔다. 아무리 풀어가는 이야기가 다르더라도 같은 시기, 같은 주제의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는 건 배우에게도 큰 고민이 됐을 터. 유해진은 최근 악화된 사회 기류를 인식한 듯 조심스러워했지만 "가슴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면서 '봉오동 전투'를 보면서 느낀 끌림을 전했다.
/사진=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봉오동 전투'는 1919년 3.1운동 이후 봉오동 일대에서 활발하게 벌어진 무장 독립 항쟁을 소재로 했다.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의 월강추격대에 맞서 독립군이 최초로 승리한 봉오동 전투의 과정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유해진이 연기한 황해철은 몸을 바쳐 월강추격대를 봉오동으로 이끈 인물이다. 봉오동 전투를 지휘한 홍범도 장군은 널리 알려졌지만 그의 작전을 수행했던 독립군들의 이야기는 그렇지 않았다. 유해진은 섬세한 연기력으로 이름없는 독립군 중 하나였던 황해철을 입체적으로 완성시켰다.
영화 '봉오동 전투' 유해진/사진=쇼박스
영화가 끝난 후 호평이 이어졌어요.
아무리 제 영화라도 속상할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는데 이번엔 괜찮았던 거 같아요. 시사회를 끝낸 후, 원신연 감독을 안아주며 '고생했다'고 말해줬어요. 저랑 친구거든요. 시사회 전엔 배우들도 조마조마해요. 이걸 어떻게 말해야 와 닿을지 모르겠는데, 열심히 노력한 결과물을 어떻게 보실지 궁금하면서 긴장돼요.

'말모이'에 이어서 '봉오동 전투'도 항일 영화에요.
영화는 끌림이에요. 그게 재미가 될 수 있고, 의미가 될 수 있죠. 작품을 고민할 때 항상 끌림이 있는지를 생각해요. '봉오동 전투'는 메시지도 있고, 어쨌든 후련함과 통쾌함이 있는 승리의 역사잖아요. 암울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지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 같아서 후련함이 있어 좋더라고요. 그래도 연달아, 같은 해에 항일 영화에 출연하는 게 배우로서 망설여지는 부분도 있었을 거 같아요.
'말모이' 다음이라서라기 보단, '말모이'에서도 '봉오동 전투'도 저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아닌, 민초를 연기해야 하는 거였어요. 양심의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다들 정말 좋은 캐릭터잖아요. 희생하면서 큰 일을 치러내는 분들이고요. 제가 연달아 그분들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어요.
/사진=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봉오동 전투'에서 특히 황해철이란 인물은 웃음과 진지함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극의 분위기를 이끌더라고요.
그 균형을 잡는 게 어려웠어요. 봉오동 전투에서 승리하기에 앞서 알려지지 않았던 희생이 있었다는 것에 영화의 포커스를 맞추는 데, 이 안에서 용서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웃음이 필요했어요. 처음부터 너무 묵직하게 가면 무거워지니까, 그 범주 안에서 할 수 있는 농담을 찾는 게 제 과제였죠.

균형있는 웃음을 위해 애드리브로 준비했던 장면이 있나요?
극중 쿠사나기가 저에게 '네 눈은 왜 그러냐'라고 말할 때 눈을 깜빡이는 장면이 있어요. 그 부분은 제가 애드리브를 준비했어요. 그게 제가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웃음이었던 거 같아요. 제 연기를 보면서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면 잘못된 거라 생각했죠. 영화 곳곳에서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고생한 흔적이 보여요. 본인도 '원 없이 뛰었다'고 하시고요.
여름에 시작해서 겨울에 촬영이 끝났는데, 첫 촬영할 땐 비바람이 엄청나서 너무 추웠던 기억이 나요. 미친듯이 쏟아지는데, 폭탄을 피하기도 힘든데 비바람이 생각 외로 강해서. 그래도 원없이 뛰었어요. 뛰면서 소리도 지르고요. 평소에 제가 화병이 있나 싶었다니까요.(웃음) 뛰면 좋고, 안 뛰면 답답하고. 산에서 부는 바람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사진=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평소에도 등산을 즐기는 걸로 유명한데요. 등산으로 비축한 체력이 도움이 됐나 봐요.
'봉오동 전투'에서 조우진, 류준열에 비해선 제가 연장자인건 맞는데 제가 그렇게 늙지 않았습니다.(웃음) 평소에 산에서 뛰는걸 좋아했어요. 지방가면 평균적으로 8km 정도, 조금 더 뛴다 하면 10km 정도 뛰어요. 예전엔 산 정상에 올라서 둘러보는 게 좋았는데, 요즘은 명상도 하고 앉아있다가 와요. 그런 시간들이 좋아서 등산을 하게 되는거 같아요. 주변에선 산신령 같다고도 하지만요.

이번 작품을 위해 준비한 건 칼 액션인가요?
칼이 워낙 무거워서 따로 준비할 것도 없었어요. 한팔로 들고 있기도 힘들었어요. 액션을 할 땐 가짜였지만, 클로즈업으로 찍을 땐 진짜 칼을 들었는데, 상당히 무거워서 뭘 할 수 없었죠. 감독님과 기교를 부리는 액션을 하지 말자고 했는데, 생존을 위해서도 뭘 할 수 없었달까요. 이북 사투리를 쓰는 설정인데요.
영화 '간첩', '무사'에서도 이북 사투리를 써서 낯설진 않았어요. '간첩'때 사투리 선생님이 이번에도 오셨더라고요. 이북 사투리라도 다른 지역 말을 하면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해요. 같은 지역 사투리를 하니까 힘든 부분은 없었어요.

함께 연기했던 류준열과 조우진은 어땠나요? 세 사람의 균형이 돋보였다는 평도 있어요.
제가 보기에도 앙상블이 좋았던 거 같아요. 누군가에게 집중되는게 아니라 모두가 다 보이더라고요. 준열이가 묵직하게 있고, 저와 우진이가 개그를 하고. 그런 전체적인 부분들이 조화를 이룬 거 같아요.
영화 '봉오동 전투' 유해진/사진=쇼박스
개그 자부심도 있고, 예능에서도 사랑받았어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그런 모습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영화는 개그가 아니라 연기니까요. 개그는 윤활유 같은 역할이죠. 재밌는 포인트를 찾아내는 건데, 뜬금포로 던지는 건 아니라고 봐요. 영화에서 가끔 '예능에서 하던거 해주세요'라고 하면, 싫더라고요. 작품은 작품 안에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고 봐요.

그래도 2015년 tvN '삼시세끼' 바다목장부터 올해 '스페인민박'까지 꾸준히 출연하고 계세요.
'삼시세끼'는 저에게 신선한 경험이었고, 색다른 추억이 됐어요. 진짜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것도 느꼈죠. 산에 가면 항상 ''삼시세끼' 안하냐'고 물어보시고요. 그런데 저는 주업이 연기니까요. 다음을 약속하긴 어려워요. 갑자기 나영석 PD에게 연락이 오는데, '언제언제 시간이 되냐'고 물어요. 먼저 회사랑 일정을 묻고 저에게 전화하는 거 같아요. 마침 스케줄도 없고, 이걸 안하면 뒤에 작품들이 있어서 오래 못할 거 같고 '그래 모처럼 얘기나 들어보자' 하고 만나면 하게 되더라고요.(웃음)

'삼시세끼' 속 역할은 진짜 본인 스스로 하는 건가요?
정하진 않아요. 그런데 차승원 씨는 요리를 하는 포지션이니까, 그 나머지 중에서 제가 할 일을 찾죠. 제작진도 저에 대한 준비는 하나도 해주지 않아요.(웃음) '스페인 민박' 찍을 때도 공구가 없어서 그 건물을 원래 관리하던 분에게 손짓과 표정으로 빌렸어요. 연극에서 했던 경험이 있어서 톱질도 하고 그러는 거죠. 다음 작품 '승리호'에서는 로봇 목소리로 출연하더라고요.
그건 그것대로 또 새로운 경험이에요. 제가 주가 되는 작품이 아니라 말하기 조심스럽긴 해요. 배우로서 전 항상 새로운 작업을 하고 싶어요. 물론 항상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순 없겠죠. 그래도 할 수 있는한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다는 게 제 마음이에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