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베 정부는 무엇을 잃고 있을까?

日의존도 높은 한국경제 당분간 차질 불가피
자유무역질서 파괴, 일본에도 부담으로 작용
"한일 양국 국제분업·단일경제권에도 악영향"

이종윤 <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前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
지난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간소화국가)에서 배제하는 결정이 일본 정부 각의를 통과했다. 한국은 일본의 통상국가 중 사실상 적성(敵性) 국가군으로 취급받게 됐다. 아베 정부가 왜 이런 정책적 결단을 내렸는가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일본 입장에서는 한·일 국교 정상화시 청구권 자금을 지불해 식민지 지배에 따른 피해 보상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후 위안부 문제 및 징용공 문제가 차례차례 제기되자 한국과의 정부간 협정은 무의미하다고 판단, 한국과 더 이상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지 않겠다고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세계 자유무역 질서를 선도하는 미국이 트럼프 정권 출범과 더불어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채택하는 것을 목격했다. 따라서 미국도 이번 일본의 결정에 별다른 이의 제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일본 정부의 결정으로 한국 경제는 엄청난 시련에 직면할 것이 확실시된다. 1960년대 이후 첨단산업을 비롯한 한국의 산업화는 일본의 생산설비와 소재·부품에 의존해왔다. 이미 반도체 산업에서 보는 것처럼 이러한 생산설비와 소재·부품에 대한 일본의 수출 억제는 여러 산업 분야에 걸쳐 원활한 생산 활동을 제한할 것이다. 결국 한국의 당해 산업은 설비·소재·부품을 자체 개발·생산하거나 제3국에서 수입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는 않다. 상당 기간에 걸쳐 이들 산업의 생산 차질이 불가피해 한국 경제의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될 전망이다.

그러면 이러한 정책적 선택을 한 일본은 문제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한국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일본 경제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이다.

첫째, 자유무역국가로서의 이미지가 실추될 것이다. 미국이 보호무역을 하니 일본도 괜찮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 경제는 식량과 에너지 완전 자립과 많은 지하자원의 존재로 인해 자유무역을 하지 않아도 결정적 타격은 없다. 반면 일본이나 한국 경제는 수출입 없이는 국민경제가 성립되지 않을 정도로 타격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이 자유무역 질서를 스스로 파괴한 것은 일본 경제의 대외 활동에 두고두고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둘째, 일본이 이러한 조치를 취하면 한국도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1차적으로 일본 소비재 불매 운동과 일본 관광 축소가 진행되고 있다.

셋째, 한국 경제도 초기에는 어려움을 겪겠지만 부품·소재 자체 생산 및 제3국 대체 수입이 확대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한일 경제는 사실상 별개의 경제권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게 되면 한일 경제는 지금보다도 더 제3국에서 과당경쟁을 벌이면서 양국 교역 조건이 악화되어갈 것이다.

넷째, 한일은 다 같이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줄어가고 있으며 인적 자원의 질적 차이도 크지 않다. 양국 간 국제 분업 필요성이 매우 높은 대목이다. 그런데 이번 조치로 인해 사실상 국제 분업이 차단되면서 양국이 모두 그에 따른 경제적 이익과 가능성을 크게 상실할 것이다.

아베 정부의 이번 조치는 한국인에게 과거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떠올리게 해 양국 관계가 더욱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중 간 남중국해 분쟁과 한·중 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 목격을 통해 한일 경제계는 중국이 자유무역 통상 질서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다고 판단했다. 또 양국 기업이 더욱 협력해 자유무역 성격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창설하자고 다짐해왔다. 한일이 협력하면 엄청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데도 눈앞 선거와 표만 계산하는 양국 정치가들로 인해 이렇게 외면되는 현실이 안타깝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