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세 폭탄에 中 '위안화 절하' 반격…환율전쟁 불붙다

11년 만에 달러당 7위안 돌파
심리적 마지노선 깨졌다

中정부 '포치' 용인한 듯
중국 위안화 가치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5일 역내·역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가 모두 7위안 선 아래로 추락했다. 중국 금융당국과 시장이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기던 ‘포치(破七: 위안화 가치가 달러당 7위안 밑으로 떨어지는 것)’가 현실화한 것이다. 지난달 중국 상하이에서 재개된 미·중 무역협상에서 뚜렷한 돌파구가 마련되지 못한 데다 중국 경기의 하방 압력도 지속돼 위안화 가치 하락세가 가팔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한 직원이 11년 만에 달러당 7위안을 넘은 위안화 환율 그래프를 보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위안화 가치 하락세 가팔라위안화 역외시장인 홍콩 외환시장에서 포치의 충격이 먼저 나타났다. 이날 오전 10시 홍콩 외환시장이 문을 열자마자 위안화 환율은 급등하기 시작했다. 장중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8% 급등한 달러당 7.1092위안까지 뛰었다. 환율이 올랐다는 건 그만큼 가치가 떨어졌다는 뜻이다. 충격파는 곧바로 중국 외환시장으로도 번졌다. 이날 역내시장에서 위안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3% 상승한 달러당 7.0397위안까지 치솟았다. 위안화 환율이 역내시장에서 달러당 7위안 선을 돌파한 것은 2008년 5월 9일 이후 11년3개월 만이다.

위안화 가치가 급락한 데는 중국 인민은행이 고시한 기준환율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다. 인민은행은 이날 달러 대비 위안화 기준환율을 전 거래일보다 0.33% 오른 달러당 6.9225위안으로 고시했다. 기준환율이 6.9위안을 넘은 것은 지난해 12월 이후 처음이다.

1994년부터 관리변동환율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중국은 매일 오전 외환시장이 문을 열기 전 인민은행이 기준환율을 공표한다. 인민은행은 전날 시장에서 거래된 위안화 환율과 주요 교역 상대국의 통화 바스켓 환율을 고려해 기준환율을 산정한다. 당일 시장환율은 인민은행이 제시한 기준환율 대비 상하 2% 범위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 위안화 가치가 외환시장의 투기적인 거래에 따라 급변동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다.
‘중국 정부 용인설’ 퍼져

인민은행이 예상보다 기준환율을 높게 제시하자 시장에선 중국 정부가 사실상 포치를 허용했다는 인식이 퍼졌다. 이후 위안화 환율 상승에 베팅하는 물량이 외환시장에 대거 유입된 것으로 풀이된다.올해 들어 지난 4월까지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는 오름세를 지속하며 2%가량 상승했다. 하지만 5월 초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되면서 올해 상승폭을 모두 반납했다. 이후 6.9위안대에서 움직이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1일부터 3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지난 1일부터 급락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선 추가로 미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할 방법이 없는 중국 정부가 위안화를 평가절하해 대응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위안화 가치가 하락하면 수출품 가격이 낮아져 미국의 관세 부과로 인한 충격을 부분적으로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켄 청 미즈호은행 외환전략가는 “미국이 추가 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인민은행이 단기적으로 위안화 환율을 안정적인 수준으로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분석했다. 앞서 이강 인민은행장도 “위안화 환율에 마지노선은 없다”며 달러당 7위안 선 돌파를 허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중, 미국 관세 등에 책임 돌려시장의 관심은 중국 당국이 앞으로도 위안화 가치 하락을 계속 용인할지에 모아지고 있다. 위안화 가치가 급락하면 중국 금융시장에서 대규모 자본이 빠져나가고 증시가 폭락해 중국 경제 전반에 큰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외국에서 수입하는 상품의 가격이 올라 내수 침체를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위안화 가치 하락이 중국 정부에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면 위안화 환율이 7위안 선 위에서 움직일 공산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인민은행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일방주의와 보호주의, 미국의 관세 부과 등의 영향으로 위안화 환율이 7위안 선을 넘었다”며 미국에 위안화 가치 급락 책임을 돌렸다. 그러면서 “7이라는 숫자는 방파제 같은 것은 아니고 댐의 수위와 비슷한 것”이라며 “물이 많은 시기에는 조금 더 높아지고 갈수기에는 낮아지기도 하는데 이는 정상적인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관세 부과 충격을 줄이기 위해 위안화 가치를 더 내릴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인민은행은 다만 위안화 환율을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범위에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인민은행 관계자는 “우리는 위안화 환율을 합리적이고 균형된 수준으로 유지할 경험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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