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화 '포치' 미국탓 中에 트럼프 "환율조작"…환율전쟁 불붙나(종합)

中, 무역갈등 장기화 대비 위안화 절하 '용인' 관측도 나와
美는 환율조작국 지정·상계관세 카드 '만지작'…무역협상 더 꼬여
트럼프 "중대한 위반" 비판…美언론 "中, 무역전쟁서 환율 무기화"
시장에서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1달러=7위안'의 벽이 5일 깨졌다. 환율이 달러당 7위안을 넘는 '포치'(破七) 현상이 나타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행 중이던 2008년 5월 이후 11년 만이다.
미국은 그간 중국이 자국 화폐 가치를 낮게 유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수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려 왔다.

따라서 이번 '1달러=7위안' 돌파를 계기로 환율 문제를 둘러싼 미중 양국 간의 갈등이 심화하면서 전체 무역협상 구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고개를 든다. 우선 시장에서는 상하이에서 최근 어렵게 재개된 미중 고위급 무역 협상이 별다른 성과 없이 종료된 직후 위안화 가치가 상징적인 수위 아래로 내려간 점에 주목한다.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끌어내린 것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보유 외환을 투입해 달러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적극적인 환율 방어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에서 위안화 환율 상승(가치 하락)을 사실상 용인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내달부터 3천억 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1일(현지시간) 밝혔고, 이에 중국은 맞보복 원칙을 천명하면서 양국 간 협상 분위기는 크게 어그러진 상태다. 그간 일부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 갈등이 장기화한다면 중국이 자본 유출 우려 등 부작용을 감수하면서도 수출 기업들을 돕고자 일정 수준에서는 위안화 추가 가치 하락을 용인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은 바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날 오전 인민은행이 위안화 거래의 기준이 되는 중간 환율을 올해 들어 처음으로 6.9위안 이상으로 올려 고시한 것이 '포치'가 나타나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

이미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이 6.9위안대로 오른 상황에서 나온 인민은행의 이런 움직임은 '포치' 용인 신호로 해석되며 시장의 달러 매수 움직임을 크게 자극했다. 로이터 통신은 "'7'이라는 숫자는 인민은행의 중요한 방어선으로 인식되어 왔다"며 "외환 트레이더들은 이를 중국 화폐의 추가 약세의 열쇠로 믿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최근 들어 '포치' 방어에 집착하지 않겠다면서 위안화 추가 절하를 용인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수차례 발신했다.

이강(易鋼) 중국 인민은행장이 지난달 블룸버그 통신과 인터뷰에서 위안화 약세를 미국의 압력 탓이라고 지적하면서 환율 방어와 관련해 특정 수치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언급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민은행은 이날도 같은 취지의 주장을 반복했다.

인민은행은 이날 발표한 '책임자' 명의 성명에서 "일방주의와 보호 무역주의 조치 및 (미국의) 대중 추가 관세 부과 예상 등의 영향으로 오늘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이 7을 넘어섰다"며 "이는 시장의 수급과 국제 환율 시장의 파동을 반영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날 발생한 '포치'의 근본 원인이 미중 무역전쟁을 주도한 미국 측에 있으니 자국에 책임을 돌리지 말라고 미리 명분 쌓기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이런 중국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간 미국은 '환율조작국' 지정 카드로 중국을 압박해왔다.

미국 정부는 지난 5월 환율 보고서에서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을 여전히 관찰대상국에 올렸다.

나아가 미국 정부는 달러에 대한 자국 통화 가치를 절하하는 국가들에 '환율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규정을 추진하기로 했는데 이는 직접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중국이 자국 통화 가치를 역사상 거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뜨렸다"며 "그것은 환율 조작이라고 불린다"고 공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연방준비제도도 듣고 있냐"며 연준의 통화 관리 정책에 대한 불만을 재차 표시한 뒤 "이것(중국의 환율조작)은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을 매우 약화할 중대한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에도 "중국과 유럽이 미국과 경쟁하려고 대규모 환율 조작 게임을 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미 CNBC 방송은 "중국이 2008년 이후 처음으로 달러당 7위안 돌파를 허용했다"면서 "중국이 위안화의 '자유낙하'(free fall)를 허용함으로써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환율을 무기화하고 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에게는 확실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중국 담당 선임 이코노미스트인 줄리언 에번스-프리처드는 "중국이 7위안선 방어를 중단했다는 것은 미국과의 무역협상에 대한 희망을 거의 포기했다는 것을 말해준다"면서 "직접적인 환율개입을 통한 적극적인 위안화 가치 하락에 나서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중국 인민은행이 환율을 효과적으로 무기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즈호 은행의 환율 전략가인 켄 청은 블룸버그에 "관세 인상은 치고받는 싸움으로의 회귀와 대화 중단을 의미하고, 인민은행은 가까운 시일 안에는 위안화 안정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환율시장 개입 가능성에 대한 논란은 지속돼왔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달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릴 방법을 찾아볼 것을 측근들에게 주문했다고 보도했다.

CNBC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참모들을 소집해 회의를 개최한 후 환율시장 개입에 나서지 않기고 결정했다고 같은 달 26일 보도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보도에 당일 "나는 그것을 2초 만에 할 수 있다. 나는 뭘 안 하겠다는 말은 안 했다"라고 환율시장 불개입 결정을 부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