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이후 방북자, 美 '무비자입국' 불가…평양 방문 이재용도

적용대상 3만7천여명…작년 9월 방북한 재계 특별수행원도 포함
미국대사관에 비자 따로 신청해야…이라크 등 7개국 방문자에게도 적용
美 "北 2017년 11월 테러지원국 지정 이후 기술적·행정적 조치"
2011년 3월 1일 이후 북한을 방문하거나 체류한 적이 있으면 '무비자'로 미국을 찾는 게 불가능해진다.이에 따라 최근 8년 사이 개성공단을 포함해 북한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미국에 갈 때 비자를 따로 신청해야 하는 불편을 겪게 됐다.

미국 정부는 5일(현지시간)부터 북한 방문·체류 이력이 있으면 전자여행허가제(ESTA)를 통한 무비자 입국을 제한한다고 알려왔다고 외교부가 6일 밝혔다.

ESTA는 비자면제프로그램(VWP)에 가입한 한국 등 38개 국가 국민에게 관광·상용 목적으로 미국을 최대 90일간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별도 서류심사와 인터뷰 없이 ESTA 홈페이지에서 개인정보와 여행정보 등을 입력하고 미국의 승인을 받는 식으로 입국 절차를 간소화한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방북 이력자는 미국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온라인으로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미국대사관을 직접 찾아가 영어로 인터뷰도 해야 한다.

이번 조치의 대상이 되는 한국민은 3만 7천여명이다.이는 2011년 3월 1일∼2019년 7월 31일까지 방북한 인원이다.

지난해 9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평양을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재계 특별수행원들도 마찬가지 적용을 받게 된다.

다만, 공무수행을 위해 방북한 공무원은 이를 증명할 서류를 제시하는 조건으로 ESTA를 통한 미국 방문이 가능하다.외교부 당국자는 "방북 이력이 있더라도 미국 방문 자체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며 업무·관광 등 목적에 맞는 비자를 발급받아 미국에 입국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측은 이번 조치가 테러 위협 대응을 위한 국내법에 따른 기술적·행정적 조치이며 한국 외 37개 VWP 가입국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설명해왔다.

미국 정부는 2016년부터 '비자면제 프로그램 개선 및 테러리스트 이동방지법'에 따라 테러지원국 등 지정 국가 방문자에게는 VWP 적용을 제한해오고 있다.

2011년 3월 이후 이란, 이라크, 수단, 시리아, 리비아, 예멘, 소말리아 등 7개 국가를 방문하거나 체류했다면 ESTA 발급이 불가한데 대상국에 북한이 추가되는 것이다.

미국이 문제로 삼는 방문 시점이 '2011년 3월 이후'인 것은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면서 미국 내 테러리스트 유입이 시작됐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008년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됐으나 북한에 억류됐다가 귀국 후 숨진 오토 웜비어 사건 이후인 2017년 11월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됐다.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하고 나서 이번 조치를 이행하기까지 20개월 이상 소요된 이유는 테러방지 업무를 총괄하는 국토안보부가 실무적인 준비를 마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라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북한을 다녀온 기록은 여권에 남지 않는 만큼 미국이 어떤 방법으로 방북 여부를 알 수 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자발적으로 신고하는 시스템을 따를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이 어떤 정보를 갖고 누가 방북자인지 확인하는지 알려온 바가 있느냐'는 질문에 "미국 측은 자발적인 신고, 자율시행제도(honor system)를 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방북승인을 주관하는 통일부의 한 당국자도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미국에 방북 이력자 명단을 통보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일단 미국 쪽의 요청을 받은 바가 없다"고 답했다.

이날부터 ESTA를 신청할 때 답해야 하는 자격요건질문에는 '2011년 3월 1일이나 그 이후에 이란, 이라크, 리비아, 북한,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또는 예멘에 여행하거나 체류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항목이 나온다.

전날까지만 해도 이 질문에 북한은 포함되지 않았다.

여기에 '그렇다'고 답하면 ESTA 발급이 거부된다.

방북 여부를 미국에 알릴지에 대해서는 신고자의 양심에 맡기는 셈이지만, 어떤 식으로는 북한을 다녀왔다는 것이 적발될 경우 입국 금지를 당하는 등 엄중한 조치가 뒤따를 수 있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설명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 측과 긴밀한 협조하에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노력해 나가겠다"며 "긴급히 미국을 방문해야 한다면 신속한 비자 발급이 가능토록 주한 미국대사관 측과 협의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미국이 한국에 이런 방침을 알려온 것은 약 한 달 전으로, 그사이 정부는 국민이 겪을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 등을 모색하며 미국 측과 협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방북 이력이 있는 국민이 미국을 방문할 때 불편을 겪어야 하는 만큼 이번 조치가 남북 인적교류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등에 대해서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이번 조치와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비자신청 홈페이지(www.ustraveldocs.com/kr_kr)를 확인하거나 콜센터(☎ 1600-8884)에 문의하면 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