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점제 청약, 예비당첨자도 점수順 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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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4
'형평성 논란'에 뒷북 대책정부가 신규 분양 아파트의 예비당첨자 수가 기준(공급물량 500%)에 미달해도 추첨이 아니라 가점 순으로 당첨자 순번을 부여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5월 청약제도 개편 뒤 서울의 한 분양 단지가 예비당첨자 순번을 무작위로 선정해 형평성 논란이 일자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본지 8월 3일자 A24면 참조
예비당첨자 미달땐 추첨 규정
500%로 늘리면서 수정 안돼
청량리 청약자 예비순위 혼란
예비당첨자 순번 ‘가점 순’으로국토교통부는 가점제로 아파트를 공급할 때 예비당첨자 수가 예비당첨자 비율(분양물량의 500%)에 미달해도 예비당첨자 순번을 가점 순으로 정하도록 관련 법을 개정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8일 밝혔다. 현재는 추첨으로 예비당첨자 순번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예비당첨자 제도는 미계약에 대비해 마련한 제도다. 당첨자가 계약을 포기해 미계약 물량이 발생하면 예비당첨자에게 순번대로 계약 기회를 준다.
이번 조치는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롯데캐슬 SKY-L65’ 예비당첨자 순번이 추첨으로 정해진 데 따른 대책이다. 지난 2일 전용면적 84㎡A와 176㎡ 두 주택형의 청약경쟁률이 6 대 1을 밑돌아 예비당첨자 순번이 가점이 높은 순서가 아니라 무작위로 정해졌다. 이에 따라 가점이 낮은 청약자가 높은 청약자보다 앞선 순번을 받은 사례가 속출하면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 단지에 청약한 직장인 A씨는 “청약 가점은 40점으로 청약 커트라인(41점)보다 1점 낮은데 당첨자 순번은 500번대를 받았다”며 “실수요자 위주로 청약 제도를 바꾼다더니 현금 부자가 청약할 기회만 더 많아졌다”고 지적했다.잦은 제도 개편에 청약자 ‘혼란’
이 같은 사태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과 정부가 지난 5월 발표한 청약제도 개편안이 충돌하면서 발생했다. 국토부는 5월 청약 예비당첨자 비율을 공급 가구 수의 80%에서 500%로 확대했다. 현금 부자가 미계약 물량을 쓸어가는 ‘줍줍(줍고 또 줍는다)’을 막고, 가점이 높은 수요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려는 취지에서다. 10가구를 모집하면 예비당첨자를 50명(500%) 선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당첨자(10명)를 포함해 청약 건수가 60건(청약경쟁률 6 대 1) 이상일 때는 예비당첨자 순번을 가점으로 정한다.
하지만 현행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예비당첨자 수가 기준에 미달하면 가점제로 공급하는 아파트라고 하더라도 추첨으로 순번을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청약자가 예비당첨자 수를 충족하면 가점으로, 예비당첨자 수에 미달하면 추첨으로 순번을 정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청약경쟁률 6 대 1 미만인 청량리역 롯데캐슬 전용 84㎡A와 176㎡의 예비당첨자 순번이 무작위 추첨으로 정해졌다. 투기과열지구에서 분양되는 민영주택의 경우 전용면적 85㎡ 이하는 100% 가점제로, 전용 85㎡ 초과는 가점제 50%, 추첨제 50%로 당첨자를 정한다.국토부 관계자는 “투기과열지구의 청약경쟁률이 일반적으로 6 대 1 이상이어서 이런 문제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며 “당해·기타지역 모두 미달 여부와 관계없이 예비당첨자를 가점 순으로 정하도록 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법 개정 시기에 대해선 “아직 검토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잦은 청약제도 개편이 혼선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약제도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만 열 번 바뀌었다. 분양대행사 미드미D&C의 이월무 대표는 “청약제도를 무주택자 위주로 지나치게 촘촘하게 짜려다 보니 미처 생각하지 못한 허점들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