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株 '시련의 계절'…수요예측 흥행에도 상장 후 공모가 밑도는 종목 수두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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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株 충격·증시 상황 악화로공모주 투자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올 상반기만 해도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공모주의 수익률이 꺾이면서다. 기관투자가들이 참여하는 공모주 수요예측(사전청약) 경쟁률은 여전히 뜨겁지만, 오히려 공모가를 높여 역효과만 내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공모주 투자수익률 하락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이날까지 한 달여간 코스닥시장에 신규 상장(스팩 제외)한 15개 종목 중 9개(60%)의 현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청약에 참여해 공모가로 매수한 기관·개인투자자들의 손실로 이어졌다.
최근 한 달 새 신규상장한
15종목 중 9종목 공모가 아래
캐리소프트, 코스닥 상장 철회
지난 5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2차전지 자동화설비 제조업체 코윈테크는 이날 공모가(3만4500원)보다 36.8% 낮은 2만1800원으로 장을 마쳤다. 지난달 11일 상장한 교육플랫폼업체 아이스크림에듀는 공모가(1만5900원)의 절반 수준인 8000원으로 마감했다.
증시 추락이 공모주 수익률의 발목을 잡았다. 미·중 환율 전쟁과 한·일 무역분쟁으로 이번주 들어 코스피지수는 1900선, 코스닥지수는 550선까지 밀렸다. 여기에 신라젠의 펙사벡 임상3상 중단 권고 소식이 날아들며 바이오주가 주도하는 코스닥시장이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유아동 콘텐츠기업인 캐리소프트는 지난 7일 코스닥 상장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상장 전 단계에서 흥행몰이에 성공했던 공모주마저 상장 뒤 맥을 못 추는 사례가 많다. 지난 1일 코스닥에 입성한 지문 등 등록·인증기술 개발사인 슈프리마아이디는 수요예측에서 1124 대 1, 일반 청약에서 707.3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나타냈다. 하지만 상장 1주일이 지난 이날 주가는 공모가(2만7000원)에 못 미치는 2만2400원이었다.
수요예측 과열로 공모가 거품
공모주 상장 후 주가를 짐작해볼 수 있는 선행지표로 꼽히는 수요예측 경쟁률의 신뢰도가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공모기업은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해 공모가를 결정한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수요예측 경쟁이 치열할수록, 상장 후 주가도 좋을 확률이 높다는 경험칙이 통했다.최근엔 ‘대박’으로 통하는 1000 대 1 이상의 수요예측 경쟁률 기록이 이어지고 있지만 상장 후 열기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뜨거운 수요예측 분위기가 오히려 공모주 시장에는 독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한 증권사의 기업공개(IPO)담당 임원은 “자산운용사 등 수요예측에 참여 가능한 투자기관 숫자가 급증하면서 수요예측 경쟁률이 기관 실수요를 제대로 반영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은 높은 가격과 많은 수량을 제시할수록 공모주 배정을 많이 받을 수 있다. 기관들이 수요예측에서 최대 수량을 받아가겠다고 나서고, 1000 대 1 이상의 높은 수요예측 경쟁률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투자기관 관계자 역시 “수요예측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관들이 높은 가격을 제시해 결국 공모가도 올라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모주 시장의 옥석 가리기는 심화하고 있다. 시장 상황이 나쁜 가운데서도 오는 20일 코스닥 입성을 앞둔 마니커에프앤지는 이날까지 이틀간 진행한 일반청약에서 1216.5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냈다. 수요예측(경쟁률 1056.9 대 1)에 이은 흥행 행진이다.
이고운/이우상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