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선사하는 한여름 클래식의 향연…伊 나르니음악제 개막

30일까지 매일 공연 선사…영화 '부산행' 등 韓 문화도 소개
한국인 예술감독이 기획…9년만에 움브리아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
중세시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탈리아의 고도(古都) 나르니가 8월 한 달간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선사하는 '클래식의 물결'에 빠져든다. 이탈리아반도 정중앙 움브리아주(州)에 있는 나르니는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지명이지만, 영화로도 상영된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움브리아주 언덕 위에 다소곳이 자리 잡은 동화 속 풍경의 나르니에서 11일(이하 현지시간)부터 30일까지 3주간 '제9회 나르니 국제음악제·마스터클래스'가 진행된다.

한국 출신 예술감독 아나이스 리(54·한국명 이연승)가 기획한 이 음악제는 올해에도 클래식 마니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30여개의 수준 높은 공연이 매일같이 펼쳐진다. 축제 기간에는 나르니 도시 전체가 거대한 하나의 클래식 콘서트장으로 변신한다.

시청과 박물관, 성당, 수도원 등 고풍스럽고 유서 깊은 석조 건물들이 공연장으로 변해 관람객들을 맞는다.

모든 공연은 무료로 진행된다. 국제적인 음악 축제답게 전 세계 300여명의 음악가와 음악 전공 학생들이 나르니를 찾을 전망이다.
올해에는 현악사중주단 '아벨 콰르텟'과 스위스 바젤 심포니오케스트라 클라리넷 수석으로 활동하는 아론 키에사(22)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계 음악가들도 참여해 무대를 빛낸다.

아벨 콰르텟은 2013년 독일에서 결성된 뒤 하이든 국제 실내악 콩쿠르 1위, 리옹 국제 실내악 콩쿠르 2위 및 청중상, 제네바 국제 콩쿠르 한국인 최초 현악사중주 부문 3위 등을 수상해 주목받았다. 또 스위스 바젤 심포니오케스트라 클라리넷 수석으로 활동하는 아론 키에사(22)는 지난 3월 전 세계 클라리넷 콩쿠르 가운데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칼 닐슨 국제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클라리넷의 샛별로 떠오른 인물이다.

그는 예술감독 이씨의 장남이기도 하다.

21일에는 아벨 콰르텟과 아론 키에사가 협연을 통해 아름다운 한국의 하모니를 발산할 예정이다.

이 공연은 2013년 작고한 아나이스 리의 남편이자 아론 키에사의 아버지인 레나토 키에사를 추모하는 취지로 마련됐다.

로마의 음악 명문 산타 체칠리아 교수를 지낸 저명한 음악 평론가이자 음악극 작가였던 레나토 키에사는 아나이스 리와 함께 나르니 국제음악제의 산파 역할을 한 인물이다.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한국 문화를 알리는 이벤트가 준비돼 있다.

특히 13일에는 한국에서 1천100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흥행에 성공한 영화 '부산행'이 상영돼 전 세계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첫발을 뗀 나르니 음악제를 10년도 안 돼 움브리아주 대표적인 클래식 축제로 키워낸 이씨는 서울예고를 졸업한 뒤 1984년 이탈리아로 건너와 산타 체칠리아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소프라노 조수미와 같은 시기 학교에 다닌 그는 전설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우승한 이탈리아 '스폴레토 콩쿠르' 1994년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을 계기로 이탈리아 주요 오페라 무대에 서며 두각을 나타냈다.

남편 레나토 키에사와 결혼한 뒤 출산과 육아로 '프리마 돈나'의 꿈을 접고 후진 양성에 몰두해오다 2010년 남편과 함께 나르니시와 손잡고 국제음악제를 시작했다. 이씨는 "지난 9년간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전 세계에서 유수의 음악가들이 찾아오는 국제적인 음악제로 자리매김했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하다"면서 "앞으로도 음악제를 통해 여러 방면의 우수한 한국 문화를 알리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