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고 투명하다…싱그러운 제주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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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여름 제주는 새로운 옷을 갈아입은 것처럼 눈부시고 투명하다. 물오른 나무와 푸르다 못해 옥색에 가까워지는 바다의 모습은 싱그럽기 이를 데 없다. 제주의 여름에는 주변 섬을 둘러보거나 제주도민의 속살이 느껴지는 마을을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도 아니면 푸른 숲 혹은 오름을 찾아 자유의 공기를 마셔도 좋을 것이다.
청정한 바다의 모습이 일품인 작은 섬 비양도섬 속의 섬 비양도는 한림항에서 배로 15분 정도만 가면 닿을 수 있다. 협재해변에서 보면 마치 손에 닿을 듯이 가까운 곳에 있는 것 같은데 제법 멀리 떨어져 있다. 화산 활동이 활발했던 제주도에서 비양도는 가장 늦게 생겨난 곳이다. 제주의 기생화산 중 하나로 섬 전체가 오름인 곳이다. 비양도 주민은 모두 141명. 0.5㎢에 불과한 작은 면적의 섬이어서 천천히 걸어도 40분이면 섬 전체를 돌 수 있다. 해안도로에는 제주도 본섬에서 보기 힘든 화산탄과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특히 아이를 업고 있는 듯한 모양의 바위와 코끼리 바위가 유명하다. 비양도는 고려시대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1002년(고려 목종 5년) 6월 제주도 바다 한가운데 산이 솟아 나왔는데 산꼭대기에 4개 구멍이 뚫리고 닷새 동안 붉은 물이 흘러나와 그물이 엉키어 기와가 됐다고 한다. 또 다른 일설에 의하면 어느 날 서쪽(중국)에서 커다란 산봉우리 하나가 날아왔고 이를 본 여인이 “산이 날아온다”고 소리치자 그 말이 끝나자마자 산이 한림 앞바다에 뚝 떨어졌다고 한다. 전설 그대로 날아온 섬이라 해서 이후로 이 섬은 비양도가 됐다는 것이다. 1000년의 시간을 간직한 오래된 섬은 무엇보다 오염되지 않은 청청한 바다의 모습이 일품이다. 소박하면서도 다양한 표정을 지니고 있어 예전부터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했는데 고현정, 조인성, 지진희 주연의 봄날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비양도의 해양도로를 걷다 보면 작은 동산 위로 오르는 곳이 있다. 이곳에 비양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비양등대가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고 한다. 비양도는 곳곳에 사진 찍기 좋은 곳이 널려 있다. 국내 유일의 염습지인 펄랑못은 밀물 때는 바닷물이 들어오고, 썰물 때는 민물로 바뀌는 특이한 곳이기도 하다.파스텔톤 초등학교와 연꽃이 매력적인 하가리여름이 시작되는 애월읍 하가리는 원래 조금은 잊힌 동네였다. 관광객들이 마을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연꽃 만발한 연화지의 모습 때문이었다. 크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정갈하게 주변을 채운 연꽃과 정자가 마을 중심에 들어섰다. 여름 햇볕이 무색할 정도로 도도한 꽃을 피운 모습은 이채롭기까지 하다. 연화리 근처에서 3분 거리에는 더럭초등학교가 있다. 재일동포가 세웠다는 이 작은 학교의 건물은 알록달록한 파스텔톤으로 채색돼 있다. 원래는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였지만 2018년 3월 더럭초등학교로 승격됐다. 현재 94명의 학생이 공부하는 이곳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소개되면서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호젓한 정취의 마을 안길로 들어서면 전통 올레가 펼쳐지고 수백 년을 산 폭낭이(팽나무의 제주어)와 옛사람 손길이 닿은 초가, 마을공동체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연자방아가 잘 보존돼 있다. 현무암으로 쌓아올린 돌담 위로는 덩굴 식물과 푸릇한 이끼가 있고 오랜 세월을 견딘 제주도민만의 끈끈한 정서가 느껴진다.스노클링 체험할 수 있는 일몰 명소 판포리
간단한 장비 하나면 제주의 비경이 온통 내 것이 된다. 판포리 포구에서는 동남아시아 바닷가에서나 즐길 수 있었던 스노클링을 제주에서도 즐길 수 있다. 판포리 포구는 해변이 완만해서 물놀이 초보자와 아이를 동반한 가족에게도 적합하다. 장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인근 카페와 식당에서 스노클링 장비를 빌려주기 때문이다. 간단한 샤워시설도 있어 편안하게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물놀이 뒤에는 마을 탐방을 떠나도 좋다. 도로 하나 건넜을 뿐인데 눈앞 풍경은 바다에서 들로 180도 바뀐다. 아늑한 마을 안길을 설렁설렁 걸으면 마음마저 파랗게 물든다. 판포리에서 차로 10분쯤 달리면 올레 13코스의 시작점인 용수포구에 닿는다.용수포구 언덕동산에는 용수암이 있다. 고기잡이를 나갔다 조난당한 남편을 기다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인의 슬픈 전설이 깃든 절부암이 서 있다. 절부암 바로 앞으로 잔잔한 호수처럼 생긴 바다 입구가 보인다. 절부암 주변으로는 사철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 포나무 등 난대식물이 울창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해가 지는 시간에 방문하면 풍력발전단지와 차귀도의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인근에는 성김대건신부표착기념관이 있다.
제대로 물놀이 즐길 수 있는 도두 오래물
한여름에도 17~18도를 유지하는 제주의 용천수는 발만 담갔을 뿐인데 머리끝까지 짜릿하다. 8월의 열기도 여기서는 맥을 못 춘다. 도두동에 있는 오래물은 자연이 마련한 물놀이 명소로 더위를 씻어내다 못해 으슬으슬한 추위를 경험할 수 있다. 오래물은 깊은 땅속에서 솟아나는 용천수다. 무더운 여름에는 얼음처럼 차갑고 추운 겨울철에는 물이 따뜻해 예부터 마을 사람들이 식수와 생활용수로 요긴하게 사용했다고 한다.
이곳에 가족들을 위한 수영장이 있다. 워터파크 시설처럼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시원한 물에서 피서를 즐길 수 있어 해마다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제주신화월드에도 테마파크가 생겼다. 워터붐붐쇼를 비롯해 자체 프로그램도 재밌고 시설도 좋아서 관광객이 자주 찾는 명소로 부각되고 있다. 서귀포 속골과 강정천, 정모시 쉼터와 돈내코도 시원한 여름을 즐길 수 있는 물놀이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역사의 의미를 느끼고 싶다면 김만덕 기념관즐기기보다 의미에 무게를 둔 여행자라면 김만덕 기념관을 찾아 의녀 김만덕의 삶을 돌아보자. 조선 중기 사람인 김만덕은 기녀였다. 너무나 가난하게 살던 만덕은 기녀가 됐고 이후 객주를 운영해 거부가 됐다. 여기까지는 한 여성의 성공 스토리지만 이후 그녀는 통상적인 부자의 삶이 아니라 나눔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정조 18년 제주에 불어온 강한 바람으로 한 해 농사를 망친 데다 흉년까지 겹쳤다. 조정에서는 구호미 2만 섬을 내려보냈으나 수송선마저 풍랑에 침몰되고 말았다. 이때 나선 사람이 바로 김만덕이었다. 그는 거의 전 재산을 털어 곡식을 사서 배고픈 제주 백성들을 위해 아낌없이 나눠줬다. 그녀 덕에 목숨을 부지한 이가 수천 명에 달했다. 김만덕 기념관은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각종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김만덕 기념관은 단지 그녀의 업적을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눔이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지 성찰할 수 있게 해준다. 기념관 뒤편 정원마당으로 나서면 작은 내가 흐르는 생태공원이 있고 물사랑 홍보관이 보인다. 물로 유명한 섬인 만큼 제주 사람과 물의 떼려야 뗄 수 없던 역사와 문화도 만나고, 깨끗한 물이 공급되기까지의 정보도 함께 접할 수 있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여행메모제주의 전통음식 중 담백한 옥돔 미역국은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술 먹은 다음날 자극적이지 않게 해장하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음식이 바로 옥돔미역국. 시원한 김치와 함께 옥돔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으면 한순간에 해장이 된다. 성게알 듬뿍 얹은 성게 국수나 두툼한 생선회를 무쳐낸 회국수(사진)도 맛있다. 식욕이 없다면 새콤하면서도 건강에 좋은 해초비빔밥이 좋다.
제주에서는 다양한 음악축제가 열리고 있다. 숲속 음악여행 힐링 콘서트 노고록이(편안하게라는 뜻의 제주어)가 오는 11월까지 매월 마지막 토요일 2시, 서귀포시 숲을 중심으로 번갈아 가며 열린다. 8월 31일은 붉은오름 자연휴양림에서 개최되며 성악과 피아노, 아코디언 연주에 책낭독과 시낭독 시간도 열린다. 제주시 산짓물 공원에서는 8월 말까지 토요일 저녁 7시에 산짓물 콘서트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