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선수로 나와 '행운의 깜짝 우승'…'오라 퀸'으로 거듭난 유해란

태풍 영향 36홀로 축소
제주삼다수마스터스 제패
11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제주삼다수마스터스를 10언더파 134타로 제패한 유해란이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2부투어 2주 연속 우승을 포함한 ‘3주 연속 우승랠리’다. /연합뉴스
“아빠, (최종라운드) 취소됐대요!”

“어? 그럼 우승이야!”11일 제주 오라CC(파72·6666야드). 이날 열릴 예정이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제주삼다수마스터스(총상금 8억원) 최종라운드를 앞두고 유해란(18)은 자신의 우승 소식을 협회의 ‘최종라운드 취소 공지 문자’를 통해 알았다. 제주도가 태풍 레끼마의 영향권에 들면서 경기 시작이 지연돼 전날까지 단독 선두였던 유해란은 연습장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최종라운드가 취소되면 규정상 직전 라운드 성적 1위에게 우승이 돌아간다. 유해란은 시상식을 마친 뒤에도 “아무 생각이 없다”며 “(경기 시작이) 지연될 것은 예상해 평소보다 조금 오래 몸을 풀고 있었는데…”라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태풍 레끼마가 준 ‘행운의 우승’폭풍우를 몰고온 태풍 레끼마가 ‘추천선수’ 유해란에게 ‘행운의 우승’을 안겨줬다. 2라운드까지 10언더파 134타를 치며 단독 선두로 마지막날을 기다리던 유해란은 최종라운드가 취소되면서 우승을 확정했다. 호우 경보가 발령된 제주 지역에는 오전부터 강한 바람이 불고 폭우가 내렸다. 경기위원회는 54홀에서 36홀로 대회를 축소하기로 했다. 최진하 경기위원장은 “깃대가 30도 꺾이면 초속 9m의 바람이 분다고 보는데, 그보다 더 꺾일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어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KLPGA는 36홀 이상 대회를 치르면 정상 대회로 인정한다. 상금과 포인트 등도 주어진다. 유해란은 ‘페이데이’로 불리는 최종라운드를 치르지 않고도 상금 1억6000만원을 주머니에 넣었다. 추천·초청선수가 우승한 건 올 시즌 유해란이 처음. 2010년 이후로 기간을 넓히면 2년 전 아마추어 신분으로 출전해 두 차례 우승한 최혜진(20) 등 총 일곱 차례 있었다. 악천후 탓에 36홀만 치르고 우승자를 결정한 대회는 지난 6월 에쓰오일챔피언십 이후 두 번째지만 당시에는 ‘최종라운드 격’인 일요일 경기가 열렸다.

그는 올해 남은 KLPGA투어 대회 출전 자격, 내년 1년 출전권을 손에 넣으며 ‘시드 걱정’도 한 방에 날렸다. 유해란은 참가자 명단이 발표되지 않은 대회부터 바로 출전할 수 있어 오는 22일 개막하는 하이원리조트여자오픈이 우승 후 치르는 첫 대회가 될 전망이다.지난달 25일과 이달 1일 드림투어(2부투어)에서 2주 연속 우승한 그는 정규투어까지 ‘3주 연속 우승랠리’라는 진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골프 여제’ 박인비(31),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고진영(24) 등 쟁쟁한 스타 플레이어들이 출전한 데다 정규투어 대회가 주는 중압감이 남달랐던 만큼 우승은 기대조차 하지 못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유해란은 이날도 일찍 경기를 마친 뒤 오후 6시10분 비행기로 제주를 떠나 12일 열리는 2부투어 대회 출전을 준비하려 했다. 정규 시드를 확보하면서 2부투어 대회는 건너뛰어도 되는 상황. 유해란은 “비행기 티켓 시간을 좀 더 늦출지 부모님과 상의해야겠다”며 웃었다.

장타에 아이언까지 자유자재

유해란의 이번 우승은 예상보다 빨리 나왔을 뿐 그의 ‘괴물급’ 활약은 진작부터 예견돼왔다. 176㎝의 큰 키에서 뿜어 나오는 최대 260m ‘초장타’ 드라이버가 강력한 무기다. 게다가 여자 선수들이 꺼리는 3번 아이언도 자유자재로 다뤄 200m를 거뜬히 보낸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국가대표를 지냈고 2014년 KLPGA협회장기 우승으로 일찌감치 준회원 자격을 확보했다.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출전해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했고 만 18세가 된 올 3월 프로로 전향해 점프투어(3부투어)에서 정회원 자격을 획득했다.그는 ‘오라공주’로 불릴 정도로 대회 코스인 오라CC에 유독 강하다. 유해란은 “아마추어 시절 (오라CC에서) 네 차례 우승했을 정도로 이 코스와 궁합이 좋았다”며 “워낙 많이 치다 보니 그린 위에만 오르면 라인이 쉽게 보인다”고 했다. 내년 신인상 말고는 아직 목표를 정하지 않았다는 그는 “내년이 ‘루키 시즌’인데 생각보다 우승이 빨리 나왔다”며 “신인상을 받으려면 조금 더 정교한 플레이가 필요하기 때문에 실수를 줄이는 연습을 하겠다”고 했다.

최종일 역전 우승을 노리던 김지영(23)이 8언더파로 아쉬움이 남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박인비가 4언더파 공동 8위, 고진영은 3언더파 공동 13위로 대회를 마쳤다. 최혜진은 2언더파 공동 17위, 디펜딩 챔피언 오지현(23)은 커트 탈락했다.

제주=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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