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기업은 붙잡아야 하는 고객이다

기업이 찾는 건 최적 투자처
세계가 법인세 낮추는 이유

일자리 만들고 세금 내는
기업에 주는 혜택
부당하게 여기거나 아까워 말고
과감한 세제개혁 서둘러야

권태신 <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
지난 6월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다. 경제인 간담회 참석을 위해 헬기를 타고 이동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삼성 반도체 공장을 발견하고 “도대체 저건 무엇이냐”며 엄청난 규모에 놀랐다고 한다. 간담회에서는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인들에게 5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만들어줬다고 감사를 표하고, 대미(對美) 투자를 더 확대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미국은 파격적인 세제지원으로 자국 기업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기업을 불러들이고 있다. 35%였던 법인세율을 지난해 21%로 단번에 14%포인트 낮추고 최저한세마저 없앴다. 해외 자회사의 배당소득 과세도 면제해 해외 유보금을 미국 본토로 끌어들이게 했다. 그 결과 미국 경제는 역대 최장인 121개월째 경기 확장 국면을 이어오고 있다. 실업률도 3.7%로 최근 50년 가운데 최저 수준이다. 얼마 전 국제통화기금(IMF)은 글로벌 경제의 하강 위험으로 세계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했지만 미국의 성장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고 오히려 0.3%포인트 상향 조정했다.지난달 한국 정부는 경제활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둔 2019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생산성 향상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높이고 가속상각제도를 확대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대상 자산이 한정적이고 공제율을 1%포인트 올리는 데 그친 데다 내년 말이면 세제혜택이 없어진다는 점은 아쉽다. 100대 기업의 61.7%가 이번 투자 세제지원의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미국의 납세자 싱크탱크인 조세재단(Tax Foundation)은 매년 각국의 조세경쟁력지수를 발표한다. 지난해 한국의 법인세경쟁력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28위를 기록했는데, 불과 1년 만에 8계단이나 순위가 추락했다. 이는 작년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이 22%에서 25%로 3%포인트 올라간 반면 OECD 평균은 22.4%에서 21.9%로 0.5%포인트 낮아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수년간 연구개발(R&D)과 각종 시설투자 세제지원을 축소한 것도 순위 하락을 초래했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그의 저서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오늘날 기업은 자동적으로 다국적 기업이 되며 가장 좋은 인프라를 갖춘 국가에 아웃소싱, 오프쇼어링 등 최적의 방식으로 진출한다”고 설명했다. 평평한 시대의 기업은 풍부한 먹이와 따뜻한 기후를 찾아 이동하는 철새와 같다. 자국에 얽매일 필요 없이 여러 입지조건을 고려해 최적의 투자처에 정착하는 것이다. 기업이 자국에 많이 들어올수록 투자가 활발해지고 일자리와 소비가 늘어난다. 세계 주요국이 기업 투자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법인세를 낮추는 이유다.법인세는 기업 호주머니에서 고스란히 나온 것이 아니라 여러 경제주체가 나눠 낸 것이다. 법인세를 올리면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 부담이 늘어나고, 임금 지급 여력이 줄어 급여에도 영향을 미친다. 주주들의 배당소득도 감소한다. 거꾸로 법인세를 낮추면 이들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될 것이다. 법인세 인하는 단순히 부자 감세가 아니라 기업 이해관계자들이 나눠 가져갈 파이를 키우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기업은 100여 개에 불과해 법인세율 인하는 불필요하며 재정지출을 늘리기 위해 이들에 대한 과세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의 핵심은 이들 기업이 40%가 넘는 법인세수를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수의 기업을 한정해 세 부담을 계속 증가시킨다면 철새와 같은 기업은 해외로 떠나 투자와 영업을 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여파는 중소기업과 서민을 포함한 국민 경제 전반으로 미치게 된다. 특정 기업들에 법인세수를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세원, 낮은 세율 원칙에 입각한 법인세 정책을 펴야 결국에는 더 안정적이고 더 많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

기업은 한국 경제를 살릴 수 있도록 붙잡아야 하는 고객이다. 가게가 VIP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막대한 투자와 일자리를 창출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기업에 세제혜택을 주는 것을 부당하게 여기거나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대내외 무역갈등으로 폭풍전야인 상황에서 과감한 세제개혁으로 평평한 세계의 생존전략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