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국가서 日 뺐다…정부 '맞대응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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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물자 수출입 고시 개정정부가 12일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일본을 제외하기로 했다. 연례적인 수출통제체제 개선의 일환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지만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조치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란 해석이 나온다.
내달 시행…對日 수출관리 강화
"日 협의 요청 땐 언제든 응할 것"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현행 전략물자 수출입고시의 화이트리스트인 ‘가’ 지역을 ‘가의 1’과 ‘가의 2’로 세분화하기로 했다”며 “기존 화이트리스트는 가의 1로 분류하되 일본은 가의 2에 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 장관은 “일본을 별도 분류한 것은 바세나르체제(WA) 등 4대 국제수출통제 협약에 가입했으나 국제원칙에 맞지 않게 수출제도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한국의 화이트리스트는 미국 일본 영국 등 29개국에서 일본을 뺀 28개국으로 줄게 된다. 이번 수출입고시 개정안은 20일간 행정예고와 의견수렴 절차 등을 거쳐 다음달 시행될 예정이다.
일본은 중국 북한 등 기존 ‘나’ 지역 수준과 비슷한 수출통제 절차를 밟게 된다. 1735종의 전략물자 중 개별허가 대상 품목의 심사기간이 종전 최장 5일에서 15일로 늘어난다. 신청 서류는 3종에서 5종으로 확대된다. 포괄허가를 받은 전략물자라도 재수출은 허용되지 않는다.일본에 대한 수출통제 강화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국 수출품 중 일본이 대체하기 쉽지 않은 품목이 황질산 등 일부 화학제품에 국한돼 있기 때문이다. 성 장관은 “일본 정부가 협의를 요청하면 언제 어디서든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전면전 대신 日에 '맞불용 반격'…'결정적 한방' 없어 실효성 논란
정부가 12일 ‘전략물자 수출입고시’를 개정해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일본을 빼기로 한 것은 앞선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다.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의 소재·부품 3종 수출을 제한하고 한국을 수출우대국에서 제외한 데 따른 상응 조치란 것이다. 다만 대(對)일본 수출에서 핵심 전략물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적을 것이란 지적이다.정부 “WTO 위반 아니다”
한국 수출당국이 집중 관리하는 전략물자는 총 1735종이다. 핵 또는 무기 관련 민감 품목이 597종, 일반 화학물질 및 철강 등 비민감 품목이 1138종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다음달 개정하겠다고 밝힌 고시는 이 전략물자의 수출입 통제에 관련된 내용이다. 일본이 바세나르체제(WA), 핵공급국그룹(NSG), 오스트레일리아그룹(AG),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등 4대 국제수출통제 체제에 모두 가입했으나 국제원칙에 맞지 않게 수출을 통제하고 있어 우대국에서 제외한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박태성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일본이 먼저 한국을 수출규제 대상으로 삼은 데 대한 맞보복이 아니라 일본의 수출제도 운용 문제를 발견해 제도를 수정하는 것”이라며 “(일본과 달리) 세계무역기구(WTO)를 포함한 국제법 및 국내법상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강조했다. 박 실장은 “일본처럼 반도체 소재 등 특정 품목을 지목해 수출을 제한하는 방식도 동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보복조치가 아니라 일본의 전략물자에 대한 수출관리체계가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원칙에 따라 취해진 조치”라며 “산업부가 (일본 당국의) 부적절한 사례들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수위조절’ 고심한 흔적도
정부는 수출입고시 변경안 발표에 앞서 ‘수위’를 놓고 고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강 대 강’ 대치로 치닫기보다 전략적으로 협상의 여지를 남겨 놓기 위해서다. 일본이 최근 수출규제 품목인 포토레지스트 1건에 대해 수출 허가를 내주는 등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점도 감안했다는 후문이다. 당초 수출입고시에서 일본을 ‘다’ 지역으로 분류하려다 ‘가의2’ 지역에 남겨 놓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라는 분석이다.
이번에 신설된 가의2 국가엔 원칙적으로 ‘나’ 지역 수준의 수출 규제를 적용하지만, 개별허가 신청서류 일부와 전략물자 중개허가를 면제한다는 점에서 ‘나’ 지역보다는 한 단계 위급이다.
정부가 지난 8일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고시 개정안을 논의했으나 추진 일정을 미뤘던 것도 일종의 ‘화해 제스처’로 해석됐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수출입고시 개정안에 대한 의견수렴 기간이 20일가량 되는데 일본이 대화를 희망하면 언제든 응할 것”이라며 “일본의 의견 중 적절하고 수용할 부분이 있으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전자·화학 수출업체들 ‘노심초사’
일본 측 타격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일본에 수출하는 전략물자 중 단기간 내 수입 대체가 어려운 품목은 질산, 황질산, 비금속 할로겐화물 등 화학제품 일부에 불과해서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에 타격을 주려는 목적보다 상징적인 차원의 조치”라고 했다.
하지만 재계에선 걱정이 크다. 수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4대 그룹 고위관계자는 “일본산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입 허가가 나온 뒤 불확실성이 조금 해소됐다고 봤는데 이번 한국 정부의 맞대응으로 확전될까 걱정”이라며 “한·일이 정면 충돌할 때 새우등이 터지는 건 결국 기업”이라고 말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정확하게 어떤 품목이 수출제한을 받을지 모르는 게 문제”라며 “일본 정부가 또다시 수출제한 품목을 늘리면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이와 관련, 사토 마사히사 일본 외무부상은 이날 트위터에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일본 제외가) 일본의 수출관리 조치 재검토에 대한 대항조치라면 WTO 위반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재길/고재연/성수영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