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독도는 우리 땅" 조선 어부 안용복의 '고독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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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3
강치“너희들이 죽도라 부르는 이곳 독섬은 울릉도의 부속섬이다. 옛날에는 우산국이라 불렀고, 네놈들이 아무렇게나 부르는 이 울릉도는 예전부터 우리 섬이었다. 너희 오키섬이나 요나고 놈들이 넘볼 섬이 아니란 말이다.”
전민식 지음 / 마시멜로
372쪽 / 1만5000원
1693년 4월 울릉도와 독도 인근 해역에서 불법 조업을 했다는 이유로 일본인들에게 끌려간 한 조선인이 어의없다는 듯이 외친 말이다. 그는 나랏일을 하는 관료도, 칼을 든 장수도, 이름을 떨친 학자도 아니었다. 반역죄인 조상을 뒀던 탓에 일개 어부이자 천민으로 숨죽이며 살던 평범한 백성 안용복이었다.안용복은 오늘날 독도 문제를 놓고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조선 숙종 때 불법 조업을 일삼던 일본 어선에 항의했다. 심지어 1693년과 1696년 두 차례 일본에 건너가 당시 실질적 지배자이던 에도 막부의 쇼군으로부터 조선의 독도 지배권을 확인한 문서까지 받아왔다. 하지만 돌아온 그는 대역죄인으로 몰렸다. 귀양 간 이후 어떻게 살다 죽었는지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전민식 작가가 쓴 장편소설 <강치>는 안용복이 겪은 4년간의 외로운 투쟁기를 따라간다. 독도 가제바위에 살던 수만 마리의 강치는 일본인들이 마구잡이로 포획해 멸종되고만 바다사자다. 작가는 “강치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대한민국 땅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분쟁의 땅이 되고 있는 ‘독도’의 상징”이라며 “일본의 횡포 앞에 무참히 짓밟힌 안용복과 조선 백성들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설명한다.소설은 안용복이 불법 조업을 이유로 일본에 납치돼 갖은 고초와 협박을 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몽둥이를 든 채 시종일관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왜인들을 향해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너희들이야말로 지금 조선 땅에 들어와 불법 조업을 하고 있다”고 맞받아친다. 조선이 ‘쓸모없는 땅’이라고 치부하며 근처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는 사이 마치 자기 땅 드나들듯 섬을 침범해온 일본인들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는 대목이다.
소설은 독도와 울릉도가 조선 땅이라는 일본의 확답을 받으러 가기 직전, 왜 이 일을 자신이 해야만 하는지, 이게 과연 옳은 일인지를 끊임없이 고뇌한 인간 안용복에 초점을 맞춘다. 그에게 조선이란 나라는 역적이라며 가족을 몰살하고 일본인에게 잡혀갔다 온 뒤엔 월경죄로 투옥한 참담하고 무기력한 존재였다.그럼에도 그는 왜 목숨을 건 모험을 했을까. 소설에서 안용복은 일본에 가서 목적한 바를 이루고 오더라도 자신에게 어떤 영광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아는 어머니를 향해 “제가 왜 조선을 위해 그래야 합니까”라고 하소연한다. 그의 등을 토닥여주던 어머니의 대답은 그에게 운명처럼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후회하지 않게 한다. “너는 조선사람이니까. 너는 조선의 흙이고 숨이며 물이니까. 본래 나라를 지키는 사람은 미천하고 평범한 사람이니까. 참고 숨죽이고 살아온 건 오늘을 위해서인지 모른다.”
일본인들의 농간을 겪던 안용복은 “조선엔 우리 삶이 있다. 조선이 사라지면 우리의 기억도 사라진다”며 “조선사람이 조선의 섬을 조선의 섬이 아니라고 말하는 건 곧 조선사람이 아니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되뇌인다. 민족이 바로 서지 못하고, 민족의 땅을 민족의 땅이라고 말하지 못하면 잡초처럼 흔한 평범한 사람들의 삶도 우리 것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대목이다. 또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행태에 맞서 우리가 나라와 민족에 대해, 영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소설은 그의 입을 빌려 분명하게 말해준다.
안용복은 “울릉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라는 일본 에도 막부 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도항금제령’ 서계를 받아내지만 상 대신 되려 도해금지령을 어긴 죄로 대역죄인이 돼 임금 앞에 끌려온다. 안용복은 “네게 조선은 무엇이더냐”고 묻는 숙종에게 “조선은 우리 땅이 어느 곳에 있든, 우리가 어디에 있든 시기와 질투 없이 공평하게 빛을 나눠주는 태양”이라고 답한다.임진왜란 이후 100년, 일본의 외압과 횡포를 몸소 겪어야 했던 당시 백성들의 고충은 3·1운동 이후 100년이 지난 지금,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과도 상당 부분 닮아 있다. 오래전부터 살아온 터전이고 우리의 정신이며 우리의 섬이기에 지키고자 했던 그것이 ‘나 자신의 존재를 지키는 길’이라고 온몸으로 이야기했던 안용복을 통해 소설은 당신에게 나라는 무엇이고 당신은 조국의 운명과 미래에 대해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 묻는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