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정 시한폭탄' 공기업 부실 부른 정책, 더는 안 된다

경영효율 떨어뜨리고선 채용 확대, 이중삼중 '골병'
공기업 적자 내면 세입 그만큼 줄고 재정서 메꿔줘야
분배정책 도구로 동원, 궁극적 사회적 가치까지 훼손
‘포퓰리즘 정책’의 총대를 멘 공기업들의 부실과 수난이 방치해선 안될 정도로 깊어지고 있다. 국내 최대 공기업 한국전력은 상반기에만 1조원에 육박하는 9285억원의 큰 영업손실을 입었다. 정부의 ‘탈원전’ 밀어붙이기에 호응해 구입단가가 원자력의 두세 배인 LNG(액화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 이용을 늘린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2016년 말 143.3%이던 부채비율도 176.1%(6월 말 기준)로 급등하는 등 총체적 경영난을 맞았다.

한전의 수익감소 추이를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탈원전’ 정책이 시행되기 직전인 2016년 12조1600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017년 4조9532억원으로 쪼그라들더니, 급기야 작년에는 적자(-2080억원)로 추락했다.공기업 위기는 한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여 만에 공기업 전반에서 경고 신호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339개 주요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순이익은 1조1000억원으로 2016년(15조4000억원) 대비 93% 급감했다. 우량 공기업이던 한국동서발전 한국중부발전 지역난방공사 등도 이자보상비율이 1.0 아래로 떨어졌다. 번 돈으로 대출금 이자도 못 갚을 만큼 취약한 ‘좀비 기업’으로 전락했다는 의미다. 건강보험 역시 ‘문재인 케어’ 이후 수지가 급속히 악화돼 지난해 8년 만에 적자전환(-1778억원)했고, 올 들어선 적자가 3배로 확대되고 있다.

정부의 대선 공약 밀어붙이기와 정책 실패 후유증 감추기에 공기업들이 이중삼중으로 골병드는 모습이다. 지난주 이사회에서 결국 ‘한전공대’ 설립을 결의한 한전의 행보가 외통수에 몰린 공기업들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적자 수렁이 깊어져가는 골병든 공기업을 동원해서, 안 그래도 과잉상태인 대학을 지역정서에 편승해 하나 더 짓겠다는 무정견과 불통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공공일자리 81만 개 창출’ 공약도 공기업 경영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339개 주요 공공기관들은 지난해 3만9000명을 신규채용했다. 2년 전의 2배 규모다. 인건비는 사상 최고치로 치솟을 수밖에 없다. 고용참사를 희석하기 위한 ‘통계 분식’에도 공기업이 동원되고 있다.

내부 경영효율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와 개혁마저 사라진 점이 더 큰 문제다. 정부는 성과급제 대신 직무급제를 도입하겠다던 대선 공약을 노조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있다. 똑같은 대선공약인데 어떤 것은 밀어붙이고, 어떤 건 슬그머니 제쳐버리는 이유가 뭔지 소상하게 설명하는 것이 국가경영을 위임받은 정권의 도리일 것이다.

한전이 전기료 인상카드를 꺼낸 데서 보듯 공기업 적자는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초슈퍼예산’이 예고된 가운데 공기업 부실은 연쇄파장을 부를 수밖에 없다. 적자로 배당이 불가능해지면 당장 세수감소가 불가피하다. 선진국에선 거의 민영화돼 공기업 부채가 없거나 아주 작지만, 한국은 다르다. 우리 공기업 부채는 정부부문 부채(D3)의 30%를 웃돈다. OECD 36개 회원국 중에서도 압도적 비율이다. 허상이 드러난 ‘소득주도성장’과 번지수 틀린 분배정책에 공기업을 앞세우는 것은 ‘공공서비스 제공’이라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부정이자 훼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