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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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재정적자 59.5兆 '최악'나라 살림에 빨간불이 켜졌다. 상반기 정부 통합재정수지가 38조5000억원 적자다. 통합재정수지에서 4대 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도 59조5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 적자 규모다.
잠재성장률 1%대 추락 우려
그런데도 선심성 돈풀기 '펑펑'
저출산·고령화, 복지, 통일 대비
건전 재정운용이 중요
"정치는 재물 아끼는 데 있다"
박종구 < 초당대 총장 >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장기 재정건전성 관리에 적극 나서지 않을 경우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령화에 따른 재정지출 압력에 대비해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국제통화기금(IMF),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주요 기관은 한국이 성장률 1%대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잠재성장률이 2025년 이후 1%대로 추락한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 저출산·고령화 등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요구된다”며 적극적인 재정 운용을 강조했다. 일자리도 만들고 성장률도 끌어올리는 재정확대 정책을 추진했지만 한계에 봉착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바닥 수준의 성장률, 8개월째 수출 감소, 16개월 연속 제조업 고용 감소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세수 여건이 좋았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세수 불황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상반기 국세 수입이 전년 대비 1조원 감소했다. 125개 주요 상장기업의 상반기 영업이익이 36% 격감했다. 연례행사가 돼버린 추경(追更) 편성도 지양해야 한다. 2015년 이후 5년 연속 편성됐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국채 발행을 통한 추경 편성은 국가채무비율 등 재정건전성 지표를 악화시키며 재정정책의 활용 가능성을 저하한다고 밝혔다. 24조원 규모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도 우려스럽다. 예타 제도는 1999년 김대중 정부가 선심성 재정 지출을 막기 위해 도입, 그동안 ‘곳간 문지기’ 역할을 수행해 왔다. 면제 조치로 “예타가 정치가 돼버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선심성 돈풀기가 도를 넘어섰다. 지방자치단체 올해 예산 증액분의 절반이 복지분야에 쏠렸다. 경기도는 최대 연 100만원을 지원하는 청년 기본소득제를 도입했다. 안산시는 내년부터 대학생 등록금 절반을 지원한다. 2만여 명에게 연 335억원이 소요된다. 광역단체 중 재정자립도가 꼴찌인 전라남도는 내년부터 농민 24만 명에게 연 60만원씩 농민수당을 지급할 계획이다. 소요 예산만 연 1459억원이다. 현금성 복지는 중독성이 강해 한 번 시행하면 중단하기가 어렵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의 재정 포퓰리즘이 재정 파탄으로 이어진 것은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무분별한 현금 복지를 막겠다고 시·군·구청장이 복지대타협특위를 만들었지만 선심성 복지 경쟁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로머 뉴욕대 교수는 “생산성 향상 없는 현금 분배는 인적자원을 파괴한다”고 경고했다.OECD는 기초연금과 건강보험 지출 등이 급증하고 고령화 속도가 빨라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2060년 한국 정부 순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196%까지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다. 합계출산율이 0.98명인 초(超)저출산 국가다. 저출산·고령화, 통일 대비, 복지 수요 급증 등으로 재정 건전성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 한국은 2007~2017년 OECD 32개국 중 네 번째로 높은 국가채무 증가율을 기록했다.
우리는 기축통화국이 아니고 대외의존도가 높아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 건전 재정이 과거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의 일등공신이었다. 일본은 238%의 국가채무 비율, 토건국가, 세계 최장 현수교로 상징되는 재정중독으로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했다. <치명적인 日本>의 저자 알렉스 커는 건설에 대한 열광으로 일본의 국토가 무분별하게 파괴된 현실을 고발했다. 캘리포니아는 금융위기를 교훈 삼아 긴급비축기금(State’s Rainy-day Reserve Fund)을 조성했다. 세금 감면 대신 재정흑자분을 비축해 장래에 발생할 수 있는 재정위기에 대비한다.
‘政在節財(정재절재).’ 공자는 “정치는 재물을 아끼는 데 있다”고 역설했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