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지방자치] 동물과 사람 공생 이끈 구포 개 시장 폐업

강제폐쇄 아닌 대화로 폐업 합의…지방자치 역할 주목
동물 학대 온상지 오명 벗어나 반려 동물 친화 거리로
부산 구포시장에는 60년 넘게 영업을 이어왔던 가축시장(개 시장)이 있었다. 구포 가축시장은 6·25 전쟁 이후 생겨나 한 때 점포가 60∼70곳에 육박해 전국 최대 규모였다.

당시만 해도 개 시장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개는 반려동물이라는 인식이 퍼지며 가축시장 내 철장과 도축장은 동물 학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가축시장 폐쇄 요구가 처음 시작됐다.

그 후 30년 동안 여러 차례 폐쇄 논의가 있었지만, 상인 반발 등으로 현실화하지 못했다. ◇ 1988년 서울 올림칙 이후 30년 동안 폐쇄 논란
매년 복날이면 동물보호단체가 가축시장 앞에서 개 식용 반대 집회를 열었고 상인들과 마찰로 시끄러웠다.

2017년에는 가축시장에서 탈출한 개를 도로로 끌고 가는 장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퍼져 국민적 공분을 사며 동물보호단체와 상인들 갈등은 극에 달했다.

북구는 해묵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2018년 1월 조직개편까지 단행했다. 동물보호팀을 신설해 구포가축시장 폐쇄를 위해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어 민주당 구포 개 시장 업종전환 TF 단장으로 활동하던 정명희 당시 시의원이 구청장으로 당선되며 가축시장 폐쇄 논의는 속도를 냈다.

처음에는 동물보호팀도 과거처럼 상인들의 위법사항을 찾아 강력한 행정처분으로 시장을 정비 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하지만 공권력을 행사하기 전에 상인들의 이야기에 먼저 귀 기울여 보기로 했다.

◇ 무작정 몰아내기보다 상인들 이야기에 귀 기울인 지자체
상인들 반응은 의외였다.

대다수 상인은 "어쩔 수 없이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 다른 일이 있으면 그만두고 싶다", "자식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 "결혼을 앞둔 사돈댁에 알리기도 부끄럽다"는 사연을 털어놓았다.
이정희 북구 동물보호팀 팀장은 "생계 대책이 마련되면 업종전환을 하고 싶다는 상인들을 이야기를 듣게 됐다"며 "상인들과 상생할 수 있는 적극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대화를 통해 깨달았었다"고 말했다.

북구는 부산시와 함께 논의 끝에 가축시장이 있던 자리에 구포시장 주차난을 해결할 수 있는 공영주차장 건물과 주민 쉼터를 만들고 그곳에 업종전환한 상인들 점포를 입점시키기로 결정했다.

상인들 대부분이 동의했고 국비 지원까지 확정되며 가축시장 재정비 사업은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또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 생계보장에 발목 잡힌 개 시장 업종전환
주차장이 완공되고 업종전환이 이뤄질 때까지 상인들 생계가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구는 법제처 자문을 받아 올해 초 구포가축시장 환경정비 및 폐업 상인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상인들이 업종 전환할 때까지 생계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동물보호단체는 구포가축시장 폐쇄가 서울 경동시장과 성남 모란시장과 달리 합의에 따른 폐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한다.

경동시장과 모란시장은 폐쇄 과정에서 강제철거 등 행정력이 동원됐고 폐쇄 이후에도 고기 판매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구포가축시장은 합의로 폐쇄돼 가축시장에 있던 개는 대부분 동물보호단체에 입양돼 새 삶을 맞이했다.

◇ 합의에 의한 완전 폐쇄…개 시장→반려동물 친화 공간 변신
60년 넘게 개들이 울부짖던 자리는 주차장과 반려동물 1천만시대에 걸맞게 동물을 위한 친화 공간을 설치할 예정이다.

구포 가축시장 전체부지 3천724㎡ 중 2천381㎡에는 주차장이 증축된다.

주차장 부설상가에는 업종을 전환한 19개 업소 상인이 입주할 예정이다.

나머지 공공용지 3곳(1천672㎡)은 주민 문화광장, 반려견 놀이터, 반려동물복지시설, 개 시장 역사 현장 복원전시관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정희 팀장은 "구포 가축시장이 있던 자리는 동물 학대 온상지라는 오명을 벗고 스토리가 있는 반려동물 친화 거리로 거듭나 전국의 반려동물 애호가와 방문객들이 즐길 수 있는 메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