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장비 살리기' 예산으론 한계…'쌍화法' 등 규제개혁 병행해야

2020년 예산 510조 안팎

日보복·경기 둔화에
'경제활력' 우선
작년 8월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2019년 예산안’의 주인공은 단연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이었다. ‘미래 먹거리’에 투자하는 내용의 혁신성장은 문재인 정부의 ‘분배 우선 정책’에 언제나 밀렸다. 그랬던 혁신성장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건 불과 얼마 전 일이다.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글로벌 경기둔화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일본의 경제보복이란 초대형 악재가 더해진 여파였다. “경제 기초체력을 키우지 않으면 한순간에 국가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혁신성장과 경제활력을 조만간 발표될 ‘2020년 예산안’의 중심축에 올려세웠다는 얘기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소재·부품·장비 자립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의락 더불어민주당 의원, 성 장관, 정세균 민주당 의원, 김진표 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소·부·장 팍팍 밀어주기정부가 내년 예산안에서 가장 공을 들인 부문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이다. ‘소부장’ 관련 분야에만 쓸 수 있도록 특별회계를 신설한 뒤 올해(8000억원)보다 2.5배 많은 2조원 이상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 돈은 연구개발(R&D)과 각종 실증·테스트 장비를 구입하고 실험하는 데 쓰인다. 기획재정부는 일단 5년 정도 한시적으로 ‘소부장’ 특별회계를 운영한 뒤 상황에 따라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필요한 예산도 두 자릿수 늘린다. 시스템 반도체, 미래형 자동차, 바이오헬스 등 정부가 선정한 3대 중점사업과 5세대(5G) 이동통신, 인공지능(AI), 지능형 로봇 등 12대 선도사업이 주요 투자 대상이다.

사회간접자본(SOC) 등 인프라 투자도 확대된다. 인천 울산 등지에서 터진 ‘붉은 수돗물’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노후 상수도 시설을 교체하는 데 중앙정부 돈을 투입하기로 했다. 상수도 시설에 칩을 탑재해 실시간 수질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도로·철도·항만·상하수도망을 지능화하는 ‘스마트 인프라’ 사업을 본격화한다. 올초 발표한 23개 예비타당성 면제사업(24조원 규모)의 착공 시점도 앞당기기로 했다.
복지·고용 지원도 지속 확대

복지·고용 예산은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갈 전망이다. 하지만 내년에 시행되는 굵직한 정책들이 예정된 만큼 예산 증가폭은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적인 게 기초연금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기초연금(65세 이상 고령자 중 소득 하위 70%에 월 25만~30만원 지급) 수급자 중 월 30만원 지급대상을 소득 하위 20%에서 40%로 확대키로 했다.

내년 7월부터 시행하는 ‘한국형 실업부조’도 ‘예산 잡아먹는 하마’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취업성공패키지 등 기존 취업지원 정책에 더해 저소득층과 폐업한 자영업자의 구직촉진수당까지 지원하는 이 제도에 들어가는 예산은 내년 하반기에만 504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노인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정부가 새로운 지원대책을 내놓지 않아도 복지예산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기초연금 수급자는 2014년 제도 도입 당시에는 424만 명에 불과했지만 올 3월 520만 명으로 5년 동안 100만 명 가까이 늘었다.예산만으론 한계…규제개혁 병행해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년 예산의 방향타를 복지확대에서 경제 활력으로 튼 데 대해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평가했다. 한 경제단체의 고위 임원은 “일본의 경제보복이 한쪽에 치우쳤던 정부 정책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며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간 기업이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성과가 나는 혁신성장의 특성을 감안할 때 예산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은 마중물 역할만 하면 된다. 더 중요한 건 규제를 풀어 기업들이 마음껏 미래시장에 뛰어들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소영 교수는 “정부가 ‘소부장’을 국가 핵심산업으로 키우기로 했다면 예산배정에 앞서 산업안전보건법, 화학물질관리법 등 각종 규제부터 현실에 맞게 풀어주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상헌/성수영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