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문·안전벨트 있는데 헬멧 쓰고 운전하라니…사기 쉽지만 타기 어려운 '삼륜차'
입력
수정
지면A2
반쪽짜리 규제 개혁A씨는 올해 초 산 삼륜 전기자동차를 최근 중고시장에 내놨다. 날씨가 더워지자 도저히 타고 다닐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창문을 열면 더위를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헬멧(안전모)이었다. 현행법(자동차관리법, 도로교통법) 및 관련 규칙은 삼륜 전기차를 탈 때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오토바이 같은 이륜차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차량에 지붕과 문이 있고 안전벨트를 갖췄더라도 헬멧을 쓰지 않은 채 운전하면 불법이다.
제조업체·이용자 모두 불만
삼륜 전기차는 정부가 꼽는 대표적인 규제개혁 사례 중 하나다. 기존 법체계에 관련 규정이 없어 판매가 불가능했지만, 지난해 관련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판매가 시작됐다. 하지만 풀린 건 판매 관련 규제뿐이었다. 차량 이용을 힘들게 하는 운행 관련 규제는 풀리지 않았다. ‘반쪽짜리 규제개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삼륜 전기차 판매 규제 풀렸지만…
2017년까지는 바퀴가 3개인 삼륜차(1~2인승)는 국내 도로를 달릴 수 없었다. 법에 삼륜차에 관한 규정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삼륜 전기차를 개발하려던 중소기업은 많았지만 사업을 접어야 했다. 전기차업계에서는 “중소기업의 미래 먹거리가 하나 사라졌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월 22일 규제혁신토론회에서 “삼륜 전기차 같은 새로운 창의적 형태의 자동차 출시를 제한하고 있는데, 규제가 혁신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사례”라고 콕 집어 비판했다.삼륜 전기차 판매는 지난해 11월부터 가능해졌다. 국토교통부가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을 고쳐 삼륜차를 ‘이륜차 기타형’에 포함했기 때문이다. 그린모빌리티와 대풍EV자동차, 성지기업 등 국내 중소기업들이 판매에 나섰다. 1000만원을 밑도는 가격과 쉽게 운전할 수 있다는 편리성 등을 무기로 내세웠다. 환경부는 일부 차량에 친환경차 보조금을 줬다.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삼륜차가 이륜차로 분류되면서 탑승자는 모두 헬멧을 써야 했다. 도로교통법은 이륜차 운전자와 동승자는 안전모를 써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삼륜 전기차 제작업체와 구매자들은 한목소리로 “헬멧을 쓰면 오히려 운전에 방해가 된다”고 호소했다. 좁은 운전석에 헬멧을 쓰고 앉으면 시야가 좁아지는 데다 입김 때문에 눈앞이 흐려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안전벨트와 문이 있는 삼륜차에 한해서라도 헬멧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정부는 사륜 전기차 수준의 안전기준을 맞춰야 규제를 풀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 기준을 맞추려면 저렴한 가격의 이동수단을 제공한다는 삼륜 전기차의 장점이 사라진다”고 하소연했다.강변북로 못 달리는 초소형전기차
삼륜 전기차는 고속도로는 물론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같은 자동차전용도로도 달리지 못한다. 자동차전용도로로 지정된 청담대교 등 일부 한강다리도 건널 수 없다. 삼륜 전기차뿐만이 아니다. 성능이나 안전성 측면에서 경차와 큰 차이가 없는 사륜 초소형전기차도 마찬가지다. 르노삼성의 트위지(2인승) 등 일부 초소형전기차는 시속 80㎞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유럽에서는 초소형전기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다”며 “안전 검사를 해 일정 기준을 통과한 차량은 자동차전용도로 진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초소형전기차 이용자들도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내부순환로 같은 자동차전용도로를 이용할 수 없으니 출퇴근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하루빨리 확실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7년 국내에 출시된 트위지의 누적 판매량(지난달 말 기준)은 3420대다. 판매량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삼륜 전기차나 초소형전기차는 최고 속도가 시속 80㎞에 불과해 원활한 차량 흐름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며 “일부 초소형전기차는 별도의 충돌시험을 거치지 않아 자동차전용도로를 운행하기엔 무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유럽에서 충돌시험을 통과한 초소형전기차도 있는데, 경찰이 일괄적으로 자동차전용도로 진입을 막고 있다”고 반박했다.
도병욱/김순신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