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덕 조지메이슨대 교수 "AI 인재 키우려면 컴퓨터 공학보다 인문학 교육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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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블록체인 전문가“인공지능(AI), 블록체인 원천기술 확보 전쟁에서 한국은 이미 완패했습니다. 중국, 미국 등 선진국이 저만치 앞서나가고 있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선 관련 기술을 산업적으로 잘 ‘융합’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융합을 해낼 인재는 턱없이 적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도 사실상 전무한 상황입니다.”
美 MIT·스위스 취리히공대선
심리학·생물학 등 먼저 가르쳐
기술보다 사람에 대한 이해 우선
IT강국 한국, AI 인재는 '꼴찌'
AI 인재양성 관련 교육캠프를 진행하기 위해 지난달 베트남에서 귀국한 여현덕 조지메이슨대 공공정책대학원 석좌교수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AI, 블록체인 분야 전문가로 미주한인상공회의소총연합회 4차산업혁명위원장을 맡고 있는 여 교수는 지난 1학기엔 베트남 FPT대학에서 후학을 길렀다. 여 교수는 “베트남이 한국보다 4차 산업혁명 기술과 밀접하게 생활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며 “후발주자인 한국은 전문인력 양성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先 인문학, 後 기술 교육 필요”
여 교수는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기자에게 영화 속 한 장면이 담긴 그림을 보여줬다. 개 한 마리가 맹수 무리에게 둘러싸인 모습이었다. 여 교수는 “이 그림을 보여주면 한국 학생들은 대부분 맹수를 물리칠 생각만 하면서 난관에 부딪힌다”며 “음악을 틀어 맹수를 춤추게 하는 등 기괴하고 창의적 방법은 생각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 교수는 ‘기술’에 매몰된 한국 초·중·고등교육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교육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컴퓨터는 AI를 구현하는 도구일 뿐, AI는 컴퓨터공학이 아니다”며 “AI의 활용과 융합을 위해선 인문학적 상상력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하지만, 한국에선 AI 교육이라면서 모두가 코딩과 같은 기술을 먼저 가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여 교수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등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교육을 하는 곳은 모두 공대생에게 심리학, 생물학 등 인문학적 상상력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을 한 이후에 공학기술을 가르친다”며 “한국의 ‘기술주입식’ 교육으로는 혁신적 기술을 개발하려는 동기 부여가 어렵다”고 말했다. 인간의 욕구에 대한 이해가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만큼 기술보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먼저라는 게 여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AI 개발의 시초로 여겨지는 영국인 앨런튜링의 연구도 가장 큰 동기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구하는 것이었던 만큼 동기 부여가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美·中처럼 정부 주도로 투자 이뤄져야여 교수는 “뒤처진 교육으로 인해 산업계에선 이미 인재 부족 현상이 심각한 지경”이라며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가 앞으로 더 확대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지난해 7월 중국 칭화대가 발표한 ‘중국 인공지능 발전보고 2018’에 따르면 한국의 AI 인재는 2664명으로 주요 15개 국가 중 꼴찌를 기록했다. 1위인 미국(2만8536명)의 9.3%에 불과하다. 중국(1만8232명)도 한국에 비해 7배가량 AI 인재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의 AI 전문기업인 ‘엘리먼트 AI’가 올해 3월 발표한 ‘글로벌 AI 인재 보고서 2019’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AI 개발을 위해 원천기술을 직접 연구하는 ‘최고급 AI 인재’는 한국이 405명에 그쳤다. 중국(2525명)에 비해 7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다. 여 교수는 “해외에 나가 있는 연구인력을 제외하면 사실상 국내에 있는 AI 인력은 극히 적을 것”이라며 “한때 정보기술(IT) 강국이라고 자부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엔 크게 뒤처졌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여 교수는 교육혁신과 함께 AI 및 블록체인 분야 연구개발(R&D)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투입과 체계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물론 미국도 백악관 차원에서 AI 발전을 위한 위원회를 꾸려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도 민간의 자율에만 맡겨 둘 게 아니라 ‘공공이익’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