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140m…맨몸으로 만난 '태초의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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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바다, 프리다이버천혜의 자연 풍광으로 유명한 인도양의 프랑스령 레위니옹에 골칫거리가 생겼다. 2010년 무렵부터 급증한 식인 상어의 공격이었다. 황소상어의 씨를 말려야 한다는 지역 주민의 여론이 들끓었다. 사진작가이자 상어 보호활동가인 프레드 뷜르가 상어 도살을 막기 위해 나섰다. 황소상어의 등지느러미에 위성 추적기를 부착하기로 했다. 문제는 방법. 뷜르는 장비의 도움 없이 맨몸으로 잠수하는 프리다이빙으로 추적기를 달기로 했다. 산소통 등의 장비를 사용할 경우 다이버의 속도가 느려 상어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제임스 네스터 지음 / 김학영 옮김
글항아리 / 380쪽 / 1만8000원
수심 650피트(약 198m)까지 내려가 활동하는 황소상어는 얕은 물에서 먹이를 사냥한 다음 깊은 물속으로 내려간다. 사냥하러 수면 가까이 올라올 때를 기다려야 했다. 거듭된 실패 끝에 뵐르 팀은 황소상어 세 마리에 추적기를 부착하는 데 성공했다. 한 달 동안 상어들의 행동패턴을 추적한 결과 생질 항구 앞바다에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선박들이 항구 초입에 버리는 쓰레기를 뒤지러 상어들이 왔던 것. 바다에서 수영과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은 이들의 진로를 방해하는 존재였다. 상어의 습성을 알게 된 사람들은 두 달 만에 해변을 되찾았다.<깊은 바다, 프리다이버>는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프리다이빙을 통해 지구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면서도 실체는 거의 전해지지 않은 바다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책이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2011년 9월 취재차 방문한 그리스 남부 칼라마타의 바다에서 뜻밖의 장면을 마주한 뒤 프리다이빙의 세계로 빠져든다. 세계 프리다이빙 챔피언십에 참가한 선수들은 딱 한 모금 공기로 폐를 채우고는 수심 100m 안팎의 바닷속으로 내려갔다 올라왔다. 그 흔한 스쿠버 장비나 산소줄, 구명조끼, 하다못해 오리발조차 착용하지 않은 채 맨몸으로. 숨을 참는 시간은 물론 인체가 수압을 어떻게 견디는지 불가사의할 정도였다.
저자에 따르면 수심 60피트(약 18m)만 내려가도 심장 박동수는 평상시의 반으로 줄고, 혈액은 사지 말단으로부터 몸의 중앙에 있는 중요 부분을 향해 역행한다. 폐는 원래의 3분의 1로 쪼그라든다. 감각들이 마비되면서 시냅스들 사이의 신호 전달 속도가 느려지며 깊은 명상에 빠진 듯한 상태에 들어간다. 수심 300피트(약 91m)까지 내려가면 압력은 해수면의 10배다. 오렌지가 뭉개질 만한 압력이다. 심장박동은 4분의 1로 준다. 감각은 사라지고 뇌는 꿈꾸는 상태가 된다.그런데도 어떻게 프리다이버들은 100m, 140m 등으로 해마다 신기록을 쏟아내고 있을까. 수중 숨 참기 세계기록은 프랑스의 스테판 미프쉬드가 보유한 11분 35초라고 한다. 비밀은 ‘포유동물 잠수반사’라는 수륙양용 반사신경이다. 이는 사람의 얼굴이 물에 잠기자마자 촉발되는 다양한 생리학적 반사작용으로, 특히 뇌와 폐, 심장에서 활발하게 일어난다. 팔과 다리 등 말단의 혈액은 뇌와 폐, 심장 등 신체의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몰려 산소가 부족한 상황에 대처하고, 에너지 소모도 최소화한다. 이는 엄청난 수압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스위스의 생리학자 퍼 숄랜드는 이를 ‘생명의 마스터 스위치’라고 이름 붙였다. 혈류의 방향이 바뀌는 말초혈관 수축 덕분에 숨을 참을 수 있는 시간이 수면 위보다 물속에서 더 길어진다는 점도 놀랍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수심 40피트에서 찾아온다. 그쯤 내려가면 위로 향하는 부력과 아래로 끌어당기는 중력의 힘이 역전되면서 부력은 약해지고 중력은 세지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힘을 쓰지 않아도 아래로 가라앉게 된다는 것. 저자는 “이것이 바로 ‘심해의 문’”이라며 “모든 것이 역전되는 심해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책에서 해수면으로부터 시작해 수심 60피트부터 2만8700피트까지 점차 하강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심이 깊어짐에 따라 달라지는 압력과 인체의 변화, 직접 프리다이빙을 배우고 바닷속에 뛰어들면서 경험한 이야기들, 그리스·푸에르토리코·스리랑카·온두라스 등을 찾아다니며 세계 프리다이버와 과학자들을 만나 바다와 그 안에 간직된 인간의 가능성을 탐사한 기록들이 가득하다.스리랑카 트링코말리 협곡에서 심해에서만 사는 향유고래를 만나는 장면은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생생하다. “고래들은 우리에게 정면으로 다가왔다. 거의 10m 앞까지 다가와서 옆으로 부드럽게 몸을 빼더니 나른한 몸짓으로 왼쪽으로 진로를 틀었다. 클릭음의 리듬이 바뀌었다. 물속은 코다음 같은 소리로 가득 찼다.” 클릭음은 향유고래가 1㎞ 이상 떨어진 먹이를 추적할 때 내는 평범한 소리고, 코다음은 사교적인 상호작용을 할 때 내는 소리다.
경쟁을 목표로 한 프리다이빙은 맹목적이고 위험하다. 목숨을 잃거나 다칠 때도 많다. 저자는 경기로서보다는 물속 세상과 관계를 맺는 수단으로서 프리다이빙을 강조한다. 프리다이빙의 참된 가치는 지구의 은밀하고 깊은 공간의 경이로움을 탐험하는 활동이라는 얘기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