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잼 1위 '복음자리', 김수환 추기경이 담은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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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자리 잼, 철거민들 자립 위해 시작식품업계에서는 '간편성'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1인 가구와 맞벌이 부부 증가 등으로 소비자들이 요리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는 트렌드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과일가공 전문 브랜드 '복음자리'도 튜브형 제품으로 간편성을 강화한 제품을 선보이며 잼 시장 1위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다.
수녀들이 만든 잼이라는 입소문으로 판매량 증가
2009년 대상에 사업 넘기고 사회복지 기능에 집중
24일 업계에 따르면 복음자리는 시장조사 전문기관 닐슨에서 조사한 지난해 국내 전체 잼 시장 점유율에서 37%(판매액 점유율)를 차지해 1위다. 2위는 오뚜기(30.5%), 3위는 12.2%의 점유율인 대상 청정원이다. 같은 기간 복음자리의 매출액은 350억원대로 잼 매출만 떼어 놓고 보면 140억원 수준이다.복음자리의 매출은 2009년 157억원을 기록한 이후 2015년 337억, 2016년 323억, 2017년 338억, 지난 359억 등 완만한 우상향 곡선을 그린다. 올해에는 '바로 짜먹는 잼'의 인기에 힘입어 38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금은 국내 잼 시장의 강자로 올랐지만 복음자리의 출발은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1970년대 말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의 판자촌이 재개발되면서 이곳에 거주하던 주민들 대다수는 갈 곳을 잃고 철거민이 됐다.
'빈민운동의 대부'로 불린 도시빈민운동가이자 천주교 신자였던 고(故) 제정구 의원과 미국 출신의 빈민운동가이자 '파란 눈의 신부'로 알려진 고(故) 정일우 신부(본명 존 데일리)는 이들을 위해 경기도 시흥 인근에 척박했던 땅을 개간하고 공동체 마을을 세웠다. 마을 이름은 정 신부와 친분이 두터웠던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복음자리'라고 지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福音)'이 깃드는 '보금자리'가 되길 바란다'는 뜻이었다.철거민들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이 마련되면서 주거문제는 해결됐지만 식생활 빈곤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복음자리 주민들에게는 가장 필요한 것은 '경제적 자립'이었다. 제 전 의원의 부인인 신명자(현재 사회복지법인 복음자리 이사장)씨가 근처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 알갱이들을 싸게 구입해 잼을 만들기 시작했다. 복음자리 잼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연탄불에 냄비를 올려놓고 포도, 딸기, 복숭아, 자두 등 온갖 과일을 졸였지만 맛이 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본 외국인 수녀들이 설탕과 과일을 첨가해보라고 했고 과일 두 바가지에 설탕 한 바가지를 넣어 만들었다. 그러자 맛이 획기적으로 좋아졌다. 이후 복음자리만의 레시피로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잼을 생산했다. 딸기 농축액이 몸에 튀어 가벼운 화상을 입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가난에 비하면 큰일도 아니었다.
잼 생산 이후에는 판매를 하는 것이 숙제였다. 처음 잼 판매는 마을 주변 성당에서부터 시작했다. 마요네즈 병을 소독한 후 잼을 담았고 수녀들의 도움으로 '복음자리'라는 이름이 새겨진 라벨을 붙였다. 수녀들이 만든 잼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복음자리 잼은 전국 성당으로 판매처가 확대됐다.판매량이 늘어나자 밀려드는 물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1993년 경기 시화공단에 잼 공장이 세워졌고 마을 사람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게 됐다. 복음자리 구성원들은 '맛있는, 멋있는, 안전한'이라는 사훈 아래 잼 생산에 매진, 믿을 수 있고 안전하다는 이야기가 유통가에도 퍼지면서 백화점과 대형 할인점 입점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복음자리는 사업을 더 이상 키우지 않았다. 운영 규모가 커지면서 사회복지라는 본연의 기능이 약화된 것을 우려했다. 기존 거래처였던 대상그룹이 복음자리의 기업 운영을 맡는 것이 상호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2009년에 사업을 넘겼다.
현재 복음자리는 대상그룹의 자회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주)복음자리는 사회복지법인 '복음자리'에 지속적으로 제품 지원이나 쌀 기부, 기부금 지원 등으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복음자리'는 설립 이념대로 저소득층과 다문화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다.대상그룹 소속이 된 복음자리는 이제 식품 환경 변화에 발맞춰 차별화된 제품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건강한 단맛을 강조하는 '45도 과일잼'은 딸기, 블루베리, 오렌지, 라즈베리, 사과, 사과버터 6종으로 구성됐고 당도를 낮추면서도 원물의 식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또한 지난달 출시한 꽃·허브·과일 담은 '티룸(TEAROOM)'은 집에서도 카페 수준의 음료를 만들어 즐기는 '홈카페(Homecafe)족'을 겨냥해 출시됐다. 향긋한 플라워와 새콤달콤 과일을 블렌딩한 '티룸 플라워 4종', 과일과 상큼한 허브를 블렌딩한 '티룸 허브 2종'의 총 6종으로 출시했다. 티룸 6종 모두 아이스티(Ice tea)를 만들 수 있는 액상형 차제품으로 원액을 물이나 탄산수에 타는 손쉬운 방식으로 집이나 사무실에서 간편하게 전문 카페에서 즐기던 음료를 맛볼 수 있다.
복음자리 관계자는 "김수환 추기경의 뜻대로 복음자리 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립을 도왔던 보금자리가 됐다"며 "앞으로도 건강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브랜드로 성장하겠다"고 말했다.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