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공조서 韓 빼려는 아베의 함정에 빠진 격"

안민정책포럼 세미나
이원덕 교수, 정부에 쓴소리
“일본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가 카드로서 의미를 지니는 건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를 파기할 수도 있다’고 얘기할 때까지입니다. 카드를 내던진 뒤에는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사진)는 23일 서울 충무로 라이온스빌딩에서 열린 안민정책포럼 세미나에서 ‘최악의 한·일 관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주제로 발표하면서 “지소미아 파기는 한국 정부에 어떤 전략적 이익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이 교수는 한·일 관계의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에서 일본의 전후처리 외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노무현 정부 때 강제징용·징병 피해자 보상을 위한 심사위원회에 참여했다.

이 교수는 “지소미아는 한·일 양자 간 협정이지만 본질은 한·미·일 안보 협력”이라며 “지소미아로 얻을 수 있는 군사적 정보뿐만 아니라 안보 분야에서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를 파기하기로 결정하면서 한·미·일 공조에서 한국을 빼려는 아베 신조의 함정에 빠진 격이 됐다”며 “한·미·일 안보 협력에서 북·중·러 라인으로 갈아탈 것이 아니면 어떤 전략적 이익이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지소미아 파기를 이유로 단기간 내 추가 경제 보복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다만 한국 법원이 강제징용 배상을 위해 일본 기업의 압류자산 매각(현금화) 절차를 본격화하면 한·일 관계는 더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일본으로 향하는 한국 관광객의 급감,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일본 산업계의 불만 등으로 일본 정부도 당분간 숨을 고르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며 “내년 1월께 한국 법원이 일본 기업에서 압류한 재산을 현금화하는 강제 집행에 나서면 한·일 관계는 ‘루비콘강’을 건너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강제징용 피해 보상을 둘러싼 한·일 갈등 국면을 돌파할 해법으로는 ‘일본에 사죄를 지속적으로 촉구하되 배상 요구는 포기한다고 선언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 교수는 “한국 정부가 일본의 식민지배 불법성을 규탄한 뒤 물질적 배상 요구를 포기한다고 선언하는 것이 가장 신속하고 효과적인 해결 방법”이라며 “중국처럼 피해자 구제는 국내적으로 하겠다고 못 박으면서 일본을 국제적으로 규탄해 당위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를 가장 쩔쩔매게 하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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