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자제 좀"…청와대 인근 주민들 2년만에 다시 '침묵시위'

28일 호소문 발표하고 구호 없이 행진…"집회자유 있지만 정도 지나쳐"
'헌법불합치' 야간 옥외집회 금지조항 대체입법 10년간 제자리
청와대 주변에서 연일 이어지는 각종 집회·시위에 피로감을 호소해 온 인근 주민들이 2년 만에 다시 '침묵시위'를 열어 집회 자제를 요구한다. 25일 청와대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청운효자동·사직동·부암동·평창동 집회 및 시위 금지 주민대책위원회'는 오는 28일 오전 9시 30분 청와대 입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침묵시위를 열어 잦은 집회·시위에 따른 어려움을 알리고 자제를 요청할 계획이다.

대책위는 이날 행사에서 호소문을 읽은 뒤 구호 없이 침묵하며 주변을 행진한다.

대책위 관계자는 "새벽이나 늦은 밤에도 마이크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틀어놓으니 시끄러워서 잠도 못 자고 생활이 너무 어렵다"며 "시위의 자유가 있어 막을 수는 없지만 정도가 지나쳐 주민 생존권을 위해 다시 집회를 열고 고통을 호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청운효자동은 청와대 옆에 있어 과거부터 경비가 삼엄하고 개발도 덜 된 조용한 지역이었다"며 "2016년 11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부터 청와대 100m 앞까지 집회·시위가 허용되더니 동네가 시위대에 휩싸였다"고 했다.

주민들은 2017년 8월 집회·시위 자제를 요청하며 침묵시위를 벌였고 경찰에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사정이 나아지지 않자 다시 집회를 연다고 한다.
실제로 청와대 주변에는 노동단체 등의 노숙농성과 집회, 주말이면 늘 이곳까지 오는 '태극기 행진' 등 각종 집회·시위가 끊임없이 열린다.

청와대 사랑채 인근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는 주민 A씨는 "40년 넘게 이곳에 살고 있는데 최근 몇 년 동안은 시끄러워서 도저히 살 수가 없다"며 "주말에는 시위대 때문에 교통이 통제되는 때가 많아 이동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청운효자동 주민 최모씨는 "아이가 다섯살인데 밤이고 새벽이고 스피커에서 시위 소리가 나와 아이가 자다 깰 때가 많다"며 "노숙하며 농성하는 사람도 많아 밤에는 돌아다니기 무섭기도 하다"고 했다. 집회·시위를 여는 쪽도 시민들의 이런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주민들이 겪는 고통을 잘 알고 항상 죄송한 마음"이라며 "산별노조에도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집회를 자제하고 주민들과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9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효력을 잃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상 야간 옥외집회 금지조항이 근 10년간 입법공백 상태인 점도 주민들의 피로를 더하는 요인이다.

과거 집시법 10조는 일출 전이나 일몰 후에는 옥외집회를 금지하되, 집회 성격상 어쩔 수 없을 때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한 경우에만 경찰이 조건부로 허용했다.

그러나 2009년 헌법재판소는 '일몰 후∼일출 전' 개념이 너무 광범위하고 시각도 매일 달라지므로 해가 진 이후 옥외집회를 모두 제한하는 것은 헌법과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2010년까지 대체입법을 주문했지만 논란이 커 지금까지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지난 7월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은 오전 0∼7시 옥외집회를 하려면 질서유지인을 둬야 하고, 이 시간대에는 도로 행진 등 위력을 내세우는 '시위'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집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주거지역 등에서 심야에 남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소음을 내 거주자나 관리자의 보호 요청이 있는 경우 경찰이 집회·시위에 제한을 통고할 수 있고, 통고를 따르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법이 통과되면 주거지역에서 집회·시위가 지금보다는 더 질서 있게 진행돼 주민 불편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