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의 '전월세 실명제'…세입자 보호·임대소득 과세 확대

국토부 시행령 개정 착수…임대 관행 변화, 전월세 상한제 도입 빨라질 듯
임대인 신고 부담, 세금 늘어 반발…전문가 "고액부터 단계적 도입해야"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이 26일 발의한 전월세(임대차) 신고제는 여당은 물론 국토교통부 김현미 장관의 의중이 깊게 반영된 것이다.김 장관은 의원시절인 2016년 7월 전월세 가격 인상률을 5% 이내로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시행을 골자로 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한 주인공이다.

김 장관은 2017년 7월 장관 취임 당시부터 "단계적으로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추진하겠다"며 "우선 전월세 등 주택 임대를 주택 거래 신고제처럼 투명하게 노출이 되는 시스템을 구축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전월세 신고제는 사실상 '전월세 실명제'와 같다"며 "이 제도가 시행되면 2006년 매매 실거래가 신고제 도입 못지않게 임대차 시장에도 큰 변화와 파장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 임차인 보호 강화…'사각지대' 주택 임대소득 과세로 임대인에는 부담
당정이 임대차 신고제를 도입하려는 이유중 하나는 임차인 보호다.

임차인이 확정일자의 필요성을 잘 몰라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집주인들이 과세 등을 우려해 임차인에게 확정일자를 신고하지 못하도록 제약하는 경우가 있어 세입자 보호 차원에서 신고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월세 실거래 명세를 신고하면 임차인이 동사무소에서 확정일자 받은 것으로 의제처리를 하겠다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국토부는 "임대차 계약이 파악되면 최근 임차인들이 전세금 반환보증 가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가구 주택에 대한 선순위 임차보증금 파악도 수월해져 보증금 회수 리스크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월세 신고제 도입의 또 다른 이유는 과세 투명성 확보와 다주택 수요 차단이다.

정부는 2006년 부동산 실거래신고 제도를 도입해 양도소득세와 취득세 부과에서 실거래가 기반의 과세 체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그러나 그동안 전월세 정보는 세입자의 확정일자와 월세 세액공제, 등록 임대사업자의 신고 자료에만 의존함에 따라 거래 정보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

정식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사람은 계약이 갱신된 경우 표준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해 변경 내용을 3개월 이내에 신고해야 하지만 임대사업자가 아닌 일반 임대인은 이런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보증금이 소액이어서 보증금 보호의 필요성이 적거나 반대로 보증금이 고액이어서 자금 출처 조사나 증여세 추징을 당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세입자들이 확정일자 신고를 하지 않는다"며 "앞으로 이러한 거래들이 모두 노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월세 신고제 도입에는 내년부터 올해 발생한 연 2천만원 이하 임대소득에 대해 분리과세를 시행하는 만큼 임대소득 과세 환경이 무르익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국세청 자체적으로도 국토교통부의 주택임대차정보시스템(RHMS)과 별도로 인별 주택보유 현황, 임대차 내용 등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주택임대소득 신고안내 모델'을 구축해 임대소득 세원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보다 정확한 임대소득 과세를 위해서는 전월세 신고제를 통한 계약 내용 파악이 필수다.
신방수 세무사는 "2천만원 이하 분리과세도 정확한 전월세 거래명세 없이는 미신고자에 대해 추정 임대료를 부과할 수밖에 없다"며 "전월세 신고제 도입으로 임대료가 낱낱이 파악되면 과세당국이 손쉽게 세금 부과를 할 수 있고, 다주택자들의 주택 구입 의지를 꺾은 압박 수단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전월세 신고제 도입으로 전월세 상한제 시행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고 있다.

김현미 장관이 의원시절 공동 발의한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등을 도입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이미 국회에 계류돼 있다.

LH 주택토지연구원 진미윤 박사는 "임대차 신고제의 종착역은 전월세 상한제 도입이 될 것"이라며 "매매시장이 2006년 실거래가 제도 도입으로 다운계약서가 감소하고 양도세 탈루가 줄었듯이 신고제 도입으로 임대시장의 투명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빈번한 신고 부담, 임대료 전가 우려도…전문가 "점진적 확대해야"
임대차 신고제 도입은 앞으로 매매 실거래 신고 만큼 시장에 큰 파장을 가져올 전망이다.

임대인 또는 중개인에게 모든 임대차 거래에 대한 신고 의무가 부여되고, 과세 자료로 이용됨에 따라 계약서 작성부터 임대료 책정, 세입자 관리, 수리비 부담 주체 등 지난 수십년간 이어온 임대차 관행에 변화가 예상된다.

임대 수입에 대해 철저한 과세가 가능해지는 만큼 임대사업을 포기하거나 재검토하는 집주인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임대인들의 저항도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후 은퇴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김종필 세무사는 "최근 종합부동산세 인상, 공시가격 상승 등으로 임대인의 보유세 부담이 커진 가운데 임대소득세까지 부과되면 집주인의 세금 부담이 단기간에 급증하게 된다"며 "그동안 다가구 등 주택 1채로 임대를 놓아 노후 생활을 영위해온 은퇴자들의 충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호수가 10가구 안팎인 다가구·원룸 보유자들은 잦은 임대차 신고로 상당한 불편이 우려된다.

평생 많아야 두세 번인 매매계약과 달리 임대차 계약은 수시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마포구 창전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다가구·원룸 임차인들은 수개월씩 단기 계약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중개수수료를 아끼려고 임차인과 직거래를 하는 경우도 많아 임대인이 거의 매달 임대차 변경 내용을 신고해야 할 수도 있다"며 "특히 온라인에 익숙지 않은 노년층은 신고 자체가 번거롭고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원구 상계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다가구는 임대료가 싸고 보증금도 500만∼1천만원씩 소액인 주택도 많은데 이런 소액 보증금까지 신고를 의무화하면 반발이 상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개사들도 불만이 크다.

매매에 이어 전월세 거래에 대해서도 신고 책임이 주어지는 데다 중개수수료 수입도 고스란히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간 일부 중개업소들은 신고 의무가 없는 전월세의 중개수수료를 깎아주는 방식으로 현금 거래를 유도해 중개 수입 신고를 누락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임대차 신고제 도입으로 집주인이 늘어난 세 부담을 임대료에 전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국토부는 현재 전국적으로 전셋값이 안정돼 있고 당분간 입주 물량도 많아 임대료 전가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최근 분양가 상한제 시행, 자사고 폐지 움직임 등으로 서울 유력지역의 전셋값이 상승하고 있어 안심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직방 함영진 빅데이터랩장은 "임대료 전가 여부는 수요·공급 물량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상한제 시행 등으로 서울의 주택 공급이 줄어들 수 있는데 3기 신도시 건설이 서울의 임차수요를 얼마나 분산시켜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다주택자, 임대인에 대한 정부 규제로 주택 임대사업을 포기하거나 줄이고 상가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려는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신고제를 도입하더라도 일부 지역의 고액 임대주택을 중심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한 뒤 점차 전국 단위로 확대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임대 보증금이 높은 서울·세종의 보증금 3억원 이상 주택에 대해 우선 시행하는 것이다.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김진유 교수는 "임대차 정보 확충을 위해서도 전월세 신고제 도입은 필요하지만 급격한 제도 변화는 신고 주체의 저항과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며 "시장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단계적으로 시행하되 임대소득 과세시 필요경비율을 상향해주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 성실신고를 유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법 통과를 봐가며 시행령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다.국토부 관계자는 "법안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시범사업 지역과 신고대상 임대료 금액을 결정할 것"이라며 "공청회 등을 통해 여론 수렴을 하는 과정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