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저들은 나치"…최초 민주헌법 공포場서 극우집회와 야유

바이마르 국립극장 앞에서 극우집회에 '맞불'집회
옛 동독 2개주 선거 앞두고 드레스덴서도 대형 反극우집회
지난 24일(현지시간) 독일 중부 소도시 바이마르의 국립극장 앞에서 호루라기들의 '삑' 소리가 허공을 찢고 있었다. 소리는 국립극장 앞에 있는 극우주의자들의 집회를 향하고 있었다.

호루라기를 가진 시민은 60∼70명에 달했다.

이들 무리 속에 잠시 있어도 귓속이 얼얼할 정도였다. 극우주의자들이 노래를 부르거나, 연설할 때 호루라기 소리는 더욱 커졌다.

북소리도 마찬가지였다.

극우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서였다. 극우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30명 정도였다.

대형 독일 국기 깃발을 흔들면서 독일 국가(國歌) 등을 앰프로 크게 틀어놓았다.

독일 국가는 나치 시대 이후 1, 2절은 금지되고 3절만 부르는데, 극우주의자들은 1절도 부른다. 이들은 또 극우의 대표적인 구호인 '우리가 국민이다'를 외쳤다.

극우집회와 이에 대한 맞불집회 사이의 30∼40m 구간은 바리케이드가 막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낀 경찰도 양측 사이에서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이날의 모습은 독일에서 벌어지는 '극우집회와 맞불집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펄럭이는 독일 국기와 연설, 그리고 이에 대한 야유.
극우집회와 맞불집회가 열린 국립극장은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이 선포된 곳이다.

바이마르 헌법은 세계 최초의 민주적인 헌법으로 국민의 기본권 등을 명시했다.

이후 상당수 민주국가 헌법의 근간이 됐다.
국립극장 맞은편의 '바이마르 공화국 하우스'는 바이마르 공화국과 관련된 전시공간이다.

당시 격동의 근대사가 고스란히 전개돼 있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과 함께 나치의 부상 역시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이 상징적인 두 개의 공간을 사이에 두고 극우와 반(反)극우 집회가 열린 셈이다.

국립극장에서는 2015년에는 미군의 나치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해방 70주년 기념식이 열리기도 하는 등 현재에도 과거사를 되새기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반극우 집회에 참석한 리케라는 20대 독일 여성은 "극우주의자들이 2주 정도마다 집회를 연다"고 말했다.

그는 "저들은 나치다"라며 "인종주의자들의 집회를 그냥 놔둘 수 없기 때문에 나와서 반대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날 양측의 집회는 이전보다 더 열기가 있다고 한다.
내달 1일 같은 옛 동독 지역인 작센주(州)와 브란덴부르크주에서 열리는 지방선거를 앞둔 탓이다.

특히 바이마르가 속한 튀링겐주도 10월 27일에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

현재 지방선거에서는 극우 성향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제1당이 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AfD는 이미 연방하원에서 제3정당이다.

같은 날 작센주의 주도 드레스덴에서는 극우에 반대하는 대형 집회가 열렸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집회 측 추산 4만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불가분의'라는 슬로건을 걸고 거리를 점령했다.

관용과 다양성의 가치가 훼손될 수 없다는 의미다.

'나치를 위한 공간은 없다', 'AfD 멈춰라' 등의 푯말이 거리를 뒤덮었다.

드레스덴은 매주 극우 집회가 열리는 곳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반극우 시민들이 극우 견제를 위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연합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당, 기독교 단체, 과학자들, 예술가들, 기후변화 행동가들 등이 독일 전역에서 몰려들었다.

이번 작센주와 브란덴부르크주 선거 결과 AfD가 지방의회 제1당이 될 경우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기성 정당들이 이미 AfD와의 연립정부 구성을 거부한 만큼, AfD가 지방정부 권력을 잡기는 어렵겠지만, 제도권에 들어온 극우세력이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독일 국민의 37%는 기성정당이 AfD와 협력해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반면, 대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기독민주당과 사회민주당 등 기성정당은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AfD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 두 지역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