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기자 "日, 문 대통령 내민 화해 기회 놓쳐…아베 정권도 큰 책임져야"


외신 기자들이 한일 경제 갈등이 안보 갈등으로 번진 데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유화적 메시지를 보냈으나 일본이 이 기회를 놓쳤다"고 평가했다.

27일 방송되는 아리랑TV 뉴스 토론 <포린 코레스폰던츠(Foreign Correspondents)>에서는 '한일 무역갈등에 대처하는 한국의 자세'를 주제로 외신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앞서 우리 정부는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즉 지소미아(GSOMIA)를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이 지난 2일, 수출 우대국 명단, 즉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면서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와 연장 사이에서 고민해왔다. 청와대는 23일 브리핑을 통해 "일본이 한·일간 기본적 신뢰관계가 훼손되었다고 하는 상황에서 지소미아를 유지할 명분이 상실됐다"며 지소미아 종료의 배경을 설명했다.

한일 간 지소미아 종료를 바라보는 외신 기자들의 생각은 저마다 달랐다. 프랑스 공영방송 RFI의 프레데릭 오자르디아스(Frederic Ojardias) 기자는 "문재인 정권의 이번 결정은 경제제재가 북한의 잠재적 위협보다 더 위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에서 나왔다고 본다"면서 "일본은 제대로 사과를 한 적도 없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지 않다. 일본이 한국을 다시 침략할 수 있다는 (한국인들의) 우려는 비이성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일본의 정치인들이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계속 보이는 이상 이런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러한 경각심이 지소미아 협정 종료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반면 일본 NNA의 사카베 테츠오(Sakabe Tetsuo) 기자는 "지소미아는 한일동맹을 상징하는 협정이고 양국 모두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 예를 들어서 일본은 한국을 통해 ‘휴민트(HUMINT·사람을 통해 수집한 인적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한국은 일본의 위성사진을 얻을 수 있다"면서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의 비행거리 등을 포함해 한국은 일본이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 결과를 수정하기도 한다. 따라서 지소미아의 종료는 양국 모두에 해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냈다.독일 도이치 벨레의 파비안 크레츠머(Fabian Kretschmer) 기자는 다소 관망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는 "지소미아는 아직 11월 23일까지 유효하기 때문에 그때까지 양국의 협의가 있을지도 모르니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 "한-미-일 동맹이 분열되고 미국-한국, 미국-일본의 개별적인 동맹 관계만 남은 상태이므로 좋은 소식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이번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일본에 대화와 타협 방안을 제시하는 등 다소 유화된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예상 밖의 초강수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브리핑에서 일본이 정부의 문 대통령의 메시지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면서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고 언급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카베 테츠오 기자는 "일본 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일본을 향한 비난을 자제한 것에 높은 점수를 줬다"면서 "하지만 일본은 화해의 기회를 놓쳤고 따라서 문재인 정권이 지소미아 협정을 갱신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 같다. 양국 간의 불신이 너무 뿌리 깊게 내려서 이러한 상황이 초래됐다"고 말했다.프레데릭 오자르디아스 기자 또한 "일본이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때 크게 실망했고, 일본은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한다"면서 "(일본 내) 민족주의 정서가 짙게 깔려있는 상황에서 아베 총리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함구한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이어 "문재인 정권의 지소미아 결정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일본의 아베 정권도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아베 총리는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최대한 말을 아끼고 대외적으로 최대한 냉정한 대응을 유지해왔다.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발표 다음 날인 23일 "한국이 먼저 국가와 국가 사이 신뢰 관례를 회복하고 약속을 지켜주었으면 한다는 기본 방침엔 앞으로도 변함없다"고 짧게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이 전부다.산케이는 "아베 총리나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이 대외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정부 차원의 대응을 고노 다로 외무상의 항의로 단일화한 것은 과잉 반응이 한국을 이롭게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이례적으로 강하게 비판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산케이는 "일본 정부는 지소미아 파기에 대해서는 관망하는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징용 배상 판결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입장을 계속 주장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한편 27일 오전 7시 35분 방송되는 <포린 코레스폰던츠(Foreign Correspondents)>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부터 지소미아 종료까지, 한일 무역 갈등에 대처하는 한국 정부와 국민들의 자세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볼 예정이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