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유럽 가짜뉴스 규제한다는 게 가짜뉴스

英, 정부 문서서 가짜뉴스 표현 금지
독일·프랑스도 표현의 자유 더 중시

강경민 런던특파원 kkm1026@hankyung.com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부동산 및 사모펀드, 딸의 입시 관련 의혹 대부분을 ‘가짜뉴스’로 몰아붙이고 있다. 여당도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 여당은 한발 나아가 가짜뉴스 근절을 위한 법제화를 주장한다. 여당은 영국과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가짜뉴스를 줄이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며 벤치마킹의 필요성을 내세운다.

과연 그럴까. 사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유럽은 가짜뉴스라는 표현을 앞세워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더 우려하고 있다. 우선 영국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공식 성명과 문서에서 ‘가짜뉴스(fake news)’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잘못된 정보’ 또는 ‘조작된 정보’라는 표현을 쓴다. 지난해 10월 영국 하원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위원회가 정부에 가짜뉴스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고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위원회는 가짜뉴스라는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독자 선호에 따라 가짜뉴스의 개념도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가짜뉴스 대신 ‘조작된 정보’라는 용어를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일부 정치인이 자신에게 비판적이거나 불리한 언론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공격하면서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것이 위원회의 지적이다.

독일은 지난해 1월부터 네트워크시행법(NetzDG)을 시행하고 있다. 국내에선 가짜뉴스를 막기 위한 모범 사례로 소개됐지만 실상은 다르다. 형법상 명시된 나치 옹호 등 주요 범죄에 해당하는 콘텐츠를 위법 게시물로 규정하고, 이를 의무적으로 삭제하거나 차단할 의무를 부과한 법률이다. 법 시행을 놓고 지금까지도 독일에선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약할지 모른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말 프랑스 상원에서 두 번이나 부결된 끝에 간신히 통과한 ‘허위정보에 관한 법률’도 독일의 네트워크시행법과 비슷하다. 프랑스 내부에서도 언론 자유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에선 가짜뉴스의 명확한 정의와 기준조차 없다. 가짜뉴스 근절을 외치지만 정작 가짜뉴스가 무엇인지에 관한 논의는 찾기 어렵다. 이렇다 보니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듣기 싫은 비판’과 ‘자신과 다른 주장’을 모두 가짜뉴스로 싸잡아 매도하는 분위기다.

명예훼손과 모욕, 허위사실 유포 등 의도적으로 유포된 허위정보는 지금도 법적 처벌이 가능하다. 기존 현행법으로도 규제할 수 없는 가짜뉴스라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개념마저 모호한 가짜뉴스를 법적으로 무리하게 규제하면 권력에 대한 비판이 위축될 수 있다는 유럽 사회의 지적을 새겨들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