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노출 후 건강 악화되면 피해 인정…법개정 추진"

SK·애경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 사과…배상은 재판 보고 결정"
가습기살균제 진상규명 청문회
환경부가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로 건강이 악화한 사람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인정하는 내용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27일 밝혔다.박천규 환경부 차관은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개최한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의 3부 '피해지원분야' 세션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지원은 구제급여(정부 인정)와 구제계정(정부 미인정)으로 이뤄지며 폐질환(1∼3단계), 천식, 태아피해, 독성간염, 기관지확장증, 폐렴, 성인·아동 간질성폐질환, 비염 등 동반질환, 독성간염만 피해질환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이런 질환들 외에도 각종 폐질환과 결막염 등 안과 질환, 간질 등 신경계 질환, 피부염 등 피부질환, 당뇨 등 내분비계 질환, 암 질환, 신장질환 등 다양한 피해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이런 지적에 박 차관은 "현행법에는 건강피해 인정 범위를 규정해 놔 법에 적혀있지 않은 질환을 구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가습기살균제 노출이 확인되고 다른 원인이 없이 건강이 악화됐다면 무조건 피해를 인정하는 내용의 특별법 개정안을 의원 입법을 통해 내달 제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박 차관은 또 특별법 5조에서 '건강상의 피해가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것으로 볼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때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적힌 문구에도 "'상당한 개연성'이라는 문구에서 법 해석의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이 용어를 삭제하는 쪽으로 개정안을 내겠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구제급여와 구제계정으로 구분된 지원 체계도 통합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진행된 1부 '기업분야' 세션에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 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 부회장과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차남인 채동석 애경산업 대표이사 부회장이 참석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가족들에게 사과했다.

SK케미칼은 1994년 가습기살균제 원료를 처음 만들고 제품도 만들어 팔았다.

애경산업은 2002년부터 SK케미칼에서 원료를 사들여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만들어 판매했다.그러나 개발 단계부터 가습기살균제 판매가 중단된 2011년까지 제대로 된 안전성 검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최 부회장은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최 부회장은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피해받고 고통받은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 말씀드린다"며 "이번 청문회를 계기로 법적 책임 여부를 떠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진일보된 행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채 부회장도 고개를 숙인 뒤 "진심으로 사과하며 모든 죄는 저희 쪽에 있다"며 "제 생에서 이 사건에 대해 조금 더 많이 관심을 갖고 피해자분들과 소통하고 협의해 피해자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치유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보상 계획에 대해서는 재판 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며 입장을 유보했다.

최 부회장은 "판결이 나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며 "아직 임직원들이 재판을 받고 있고 SK케미칼이 상장사인 것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채 부회장도 "저희가 그동안 많은 노력을 했고 애경이 부도덕한 기업은 아니다"라며 "저희 회사도 상장돼 있고 재판도 시작됐다.

저희도 노력하고 있는 만큼 너무 극단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들 기업 관계자들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벌어진 증거인멸 의혹이나 피해자 사찰 의혹 등에 대해 "생각나지 않는다", "재판 중이어서 말하기 어렵다", "보고 받은 적 없다"고 말하는 등 대답을 회피하다가 방청석에 있던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1부 기업분야 세션에 이어 진행된 2부 정부분야 세션에는 윤성규 전 환경부 장관과 김성하 전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 등이 참석했다.

특조위는 정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2016년 공정위가 가습기살균제 판매 사업자의 표시광고법 위반 사건을 적절하게 처리했는지 따졌다.

공정위는 2012년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의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애경 등이 '솔잎향의 산림욕 효과'라는 광고 문구를 쓴 점에 대해 표기광고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2016년 8월 같은 내용의 고발 사건에 "위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판단 불가로 결론 내렸고, 2016년 8월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났다.

이에 대해 김성하 전 상임위원은 "2016년 심의 당시에는 이미 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고 2012년에 무혐의 결정 내린 것을 뒤집을 만한 증거가 없었다"며 "질병관리본부에서도 유해성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참고인으로 참석한 유선주 전 공정위 심판관리관은 "공정위는 답을 정해놓고 결론을 만들어 간다"며 "당시에도 정부가 유해성을 입증하지 못해 (공정위가) 입증하기 어렵다고 미리 결론을 내렸으며 전원 회의가 아닌 소회의에서 결론 내리기 위해 김 전 상임위원과 김학현 당시 공정위 부위원장이 (위원들을)설득했다"고 진술했다.

유 전 관리관은 2018년 말 공정위의 각종 비리 의혹을 제기했지만, 직원을 상대로 한 '갑질' 논란으로 신고돼 지난 4월 직위해제 됐다.

특조위는 환경부 관계자들이 CMIT·MIT 등을 유독물로 지정·관리할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그러나 윤성규 전 장관은 "법 시행 당시 유통된 화학물질이 1만6천종이어서 정부 예산상 모든 물질의 유해성을 확인할 수 없었다"며 "CMIT·MIT는 유통량이나 당시까지 인지되던 문제점이 상대적으로 눈에 들어오지 않아 조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